흑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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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이전
가에이 6년 6월 3일(양력 1853년 7월 8일)일본을 개국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함 네척이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너 우라가(도쿄만)에 당도했다.미국의 필모어 대통령은 매튜 페리 제독에게 일본의 개국을 명령했고,필요시 무력행동까지 허가받았으며, 류큐와 오가사와라는 영토로 확보해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게 된다.네 척의 배가 마카오에 도달하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나가사키 봉행에 서신을 보냈고,그 덕에 놀라워하고 불안해한 민중과 달리 에도 막부는 태연하게 대처했다.다만 그렇다고 해서 막부가 무얼 한 것은 아니었다.구미세계와 동아시아의 격차는 단기간에 좁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좁힐 수 있다해도 당시 막부에게는 그럴 돈이 없었다.막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도쿠가와 이에요시 쇼군이 병상에 있어 국사를 논할..
막말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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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이전
18세기는 재난의 시대였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일본의 전통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연호 겐로쿠(元祿)는 대지진(1704-겐로쿠16)과 함께 끝이 났고,새로운 연호 호에이(宝永)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일본사 최강의 대지진이 일어났고(1707-호에이4),같은 해 후지산의 역대 마지막 분화가 시작해 2년 간 지속되었다.잊을만하면 대화재가 발생해 에도와 교토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고,전세계적으로 닥친 이상저온현상으로 잊을만 하면 대기근이 덥쳐왔다.대화재 복구에는 세금이 쓰여야 하니 막부재정은 악화되었고,대기근으로 공납할 돈이 없으니 잇키(一揆)가 군발적으로 발생했다.막부는 이 사단을 해결하기 위한 화폐개혁과 정치 개편을 단행했으나 무엇하나 뚜렷한 성공을 보이지 못했다.오히려 막부재정을 개선하기 위한 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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