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流球) 혹은 오키나와(沖繩)
규슈 남쪽으로 대만을 향해 늘어진 열도를 의미하며,
이곳에는 류큐왕국이라는 국가가 오랜기간 존속했다.
나라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보니, 일본과의 경쟁에서 유리하지 못했고,
규슈와 가까운 섬들(ex:다네가시마)은 전통시대에 이미 일본의 번이 설치된 상태였다.
1602년(게이초7) 류큐 선박이 표류해 센다이에 도착했고, 막부는 이들을 구해 류큐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류큐는 이에 대한 사은사를 보내지 않았다.
동등한 위치의 국가이니 보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한데, 막부는 이에 분노했고,
아무튼 이를 명분 삼아 1609년(게이초14) 사쓰마번에 명령해 류큐왕국을 공격했다. 이를 기유왜란이라고 한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역돌격때문에 막부가 까라면 까야했던 사쓰마번은
배상금 내느라 돈도 없는데 류큐 공격으로 군비를 더 소모해야 했고, 그렇게 번의 재정은 작살이 났다.
1614년(게이초18) 류큐왕국은 결국 일본에 항복했고,
주기적으로 사은사를 보내며 도카라 열도와 아마미 열도를 사쓰마번에 할양했으며,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
이후 류큐는 청과 일본 양쪽에 조공-책봉 관계를 설정하는 이원적 책봉체제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놀랍게도 사쓰마번이었다.
사쓰마번은 아마미 열도에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했고, 이후 이는 사쓰마번의 재정 회복 및 번정 개혁을 성공시키게 했다.
그리고 이 성공이 막말 사쓰마번의 존재감으로 이어지니 그 효과는 무지막지했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지금도 언급되는, 류큐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생각하면 일본이 이를 굳이 냅둘리는 없었다.
1872년(메이지5) 일본은 류큐를 번으로 편임한다고 공표했다.
이미 폐번치현 다해서 일본 본토에는 번이 없는데, 류큐를 번으로, 쇼타이왕을 번왕으로 칭해버린 것이었다.
이를 1차 류큐처분이라고 한다.
쇼타이왕은 당연히 류큐처분에 반발했고, 청을 이용해 일본을 몰아내고자 했다.
1874년(메이지7) 모란사 사건이 발생했다.
표류한 류큐인이 대만 원주민에게 학살당한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대만을 공격했다.(대만출병)
조선을 개국시킨 것과 류큐를 편입한 것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불만이 있던 청이었지만,
내부 사정이 워낙 급해 이 부분은 배상금을 내고 미봉하고 말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청이 더이상 대만 너머의 일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1879년(메이지12) 일본은 류큐에 500명의 군경을 파견했다.
쇼타이왕은 그대로 도쿄로 압송되었고, 겨우 후작에 봉해지며 왕의 직위를 상실당했다.
류큐왕국은 가고시마현에 통합되었고, 이후 오키나와현이 설치되었다.
류큐왕국이 공식적으로 멸망한 순간이었다.(2차 류큐처분)
류큐가 일본의 세력권이 아닌, 일본의 영토로 편입당한 것에 대해 주변국은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조선에서는 일본에 대한 반감의 시작점이 되었고, 미국 역시 향후 대아시아 정책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가장 거칠게 반응한 것은 청이었다.
율리시스 그랜트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 하에 일본과 청은 류큐처분에 대한 협상을 가졌고,
중재안이 나오기는 했으나, 일본이 쇼타이왕이 도쿄 생활에 만족한다며 청의 주장을 완전히 씹어버렸다.
애초에 청도 제해권 중요성을 몰라서 그냥 섬 몇개 쿨하게 줘버렸다.
이는 현재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오키나와 역시 다른 지역처럼 일본화 정책이 진행되었으나,
다행이라면 다행히 일본과 문화적으로 공유한 것이 많아 비교적 덜 훼손되었다.
조선이나 가라후토가 1940년대에 내지로 취급된 걸 생각하면 오키나와는 빠르게 일본 본토로 편입되었다.
지금도 일본령이며 2차대전 이후 조국복귀운동으로 일본에 편입된 데에도 이러한 영향이 없지 않다.
물론 오키나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때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편 일본은 오키나와는 물론이요. 대만까지 확보해 대륙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것이 실현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이지만, 대만출병으로 그 중요성 정도는 충분히 확신한 듯 보인다.
물론 당시 일본이 설정한 대륙침략의 핵심 교두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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