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 정권에서 잊을만하면 나오는 떡밥이 있다.
이게 심지어 그냥 떡밥이 아닌, 자민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일본국 헌법(신헌법)은 1946년 11월 3일 공포되어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의 두번째 헌법으로
현재까지 글자나 토시하나 바뀌지 않은 채 사용중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 헌법이다.
이게 좋게 말하면 역사가 깊은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세상의 변화를 무시한채 유지 중인 구식 헌법인 것이다.
막말로 우리나라의 6공화국 헌법도 개헌 이야기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나오는데
훨씬 오래 된 신헌법의 개정은 그 필요성을 강조할만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개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자민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개헌안에는 여러 내용이 있는데
그 중 핵신은 역시 신헌법 제9조에 대한 것이다.
第九條
제9조 日本國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國際平󠄁和を誠實に希求し、國權の發動たる戰爭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國際紛󠄁爭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여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사용은,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戰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國の交戰權は、これを認󠄁めない。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은, 유지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
즉, 일본은 군대의 보유 및 교전을 열 권리를 헌법상에서 포기하였다.
이 조항하나로 신헌법은 '평화헌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지금이야 자위대가 있다고는 하지만, 만약 경찰예비대가 자위대로 개편되기 전인 1952년 이전에
일본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다면?
1951년 9월 8일 체결된 미일안전보장조약(舊안보조약)에 의거해 미군이 지켜준다.
만약 전력 상 이걸로 부족하다면?
여기에 더해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었기에
외교적으로 한국군의 파병 등을 요청할 수는 있겠다.
이게 나라냐? 식민지 아니냐 싶을텐데
그걸 니들 입으로 말하는 건 양심이 없는거다.
그리고 손해만 있는 건 아니었다.
1986년까지 일본은 방위비는 국가예산의 1%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 결과 대충 예산의 대부분을 기업과 경제정책에 들이부을 수 있었다.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이 완성단계에 접어든 1986년 2차 나카소네 내각은 방위비를 1%에서 1.004%로 올렸고,
그 덕에 1%원칙은 붕괴한다.
참고로 보통 국방비는 국가예산의 3%정도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니들이 국방같은 소리를 한다는 건 어이가 없을 지경이지만
일본은 주기적으로 중국의 핵무장, 북한의 핵무장 등을 이유로 재무장을 추진해왔다.
물론 이를 구체화한 최초의 사건은 걸프전 군함 파견이었다.
이 이후 캄보디아에 평화유지군 파견, 지부티 군사기지 설치 등 일본 정부는 자위대를 점차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7년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킨 것도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2년 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이후로 재무장은 자민당의 공식적인 목표처럼 언급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당시 내각총리대신은 기존 일본 정부의 자위대에 대한 해석인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나 행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부정하였고,
2015년 동맹국이나 우호국이 침략받았을시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게하는
'평화안전법제'를 제정했다. 물론 이 법이 헌법 제9조를 위반한다는 논란은 아직도 존재한다.
개헌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 아래 내용의 추가를 방해하는 헌법 제9조의 삭제
- 헌법에 자위대 명시 조항 추가
- 헌법에 긴급조치조항 추가-일본에 '필요시 선제공격을 선택할 권리' 추가
요약하자면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된 기구로 지정하고, 필요시에는 자위대를 군대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식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자위대의 군대화'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물론 자민당은 평화 및 자주권이라는 명분으로 당 내 담당팀을 구성해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위의 개헌안 세 줄 역시 자민당의 개헌 담당팀이 만든 내용이다.
이걸 단순히 당론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조치를 명령할 수 있는 건 당 총재뿐이다.
그리고 집권여당의 당 총재는 내각총리대신을 겸임하고 있다.
일본의 시각에서 이를 본다면, 자주권과 중국, 북한의 위협이라는 명분으로 재무장에 찬성하는 것은 타당해보인다.
솔직히 내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재무장에 찬성했을 것 같다.
다만 그건 가정이고,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탐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일본이 독단적 군사행동을 포기한 것은 제국주의 식민지배 및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무장을 한다는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직 과거사에 대해 우리가 할말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아쉬움을 표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이 우리에게 군사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던 외교적 우위를 잃는 점이나,
일본의 재무장으로 한일 군사 경쟁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점 등,
개인적으로는 이를 찬성할 이유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재무장을 통해 한국을 재침략-재식민지화하려 한다고 보는 건,
과한 해석이며, 일본의 재무장 의지를 다른 방식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내에서도 재무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린다.
선술했듯 자민당처럼, 일본의 국방자주성을 강조한다면 재무장에 찬성할 것이고,
지금의 일본이 가지는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곧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오는 것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은
헌법 제9조를 통한 국제사회의 인정을 근거로 개헌에 반대한다.
그 외에도 중립파라고 한다면, 개헌자체는 용인하되, 헌법 제9조의 삭제 혹은 변경에는 반대하는 측도 있다.
(자민당의 개헌안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내용은 헌법 제9조에 관한 것이지만, 다른 것도 있긴 하다)
셋 중에 비중으로 따지면, 현시점에서는 그나마 찬성측이 많다고 봐야하긴 할 것이다.
자민당 당 총재선을 한달 넘게 앞둔 상황에서 재부장 떡밥은 다시 한번 불 것이다.
근데 자민당의 당면과제이자 자민당이 그간 망가트려온 핵심 논제는 재무장이 아니다.
민생이지.
그래서 아마 재무장이 언급되기는 하겠다면, 이념적인 면에서 언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지금 내각에서는 개헌은 불가능하고, 다음 내각도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게 아니니
중의원 총선 전까지 일단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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