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서계 사건과 정한론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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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다섯 차례의 쇄국령으로 일본은 그 어떠한 나라와 교역하지 않는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채택했다.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갇혀서 굶어 죽겠다는 심산은 아니었고,그렇기에 총 네가지 사설 무역로를 두었다. 사설인 이유는 막부가 아닌 번이 주도했기 때문이다.이를 네개의 입구(四つの口)라고 한다.그 네개의 입구는 다음과 같다.마쓰마에구치: 가라후토-에조치 방면(울치인 및 청의 연해주로의 교역)-마쓰마에번이 주도나가사키구치: 나가사키 방면(네덜란드 및 청과의 주인장 무역)-나가사키 봉행소가 주도사쓰마구치: 류큐 방면-사쓰마번이 주도그리고 가장 오래되었고 중요했던 네번째가 바로 쓰시마구치이다. 쓰시마방면이고 쓰시마번이 주도한 조선과의 무역을 뜻한다.이 네 방면의 무역을 제외한 무역은 전부 밀무역이었다. 이 중 유일하게 국가..
이와쿠라 사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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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대정봉환과 메이지 덴노의 즉위 사실은 당연히 외교관계가 설정된 모든 국가에 전달되어야 할 사항이었고,비교적 가까운 조선의 경우 금방 보낼 수 있었지만, 유럽과 미국은 멀기에 일본은 대규모의 사절단을 계획하게 되었다.조선이야기는 서계사건과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다. 1870년(메이지3) 메이지 신정부는 이와쿠라 도모미를 특정전권대사로 하는 사절단을 조직하였다.사절단의 멤버는 다음과 같다.특명전권대사 이와쿠라 도모미부사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 야마구치 나오요시이하 생략 참고로 이때 동반해서 보낸 유학생들 멤버가 짱짱하다.나카에 조민, 단 다쿠마, 마키노 노부아키, 쓰다 우메코, 오토리 게이스케 등등이때 유학을 간 인사들은 이후 메이지시대의 주요 지식인 및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불평..
잠시 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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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이전
장소에 따라 시간 순서가 왔다갔다 하는 개판인 분큐와 겐지 연간을 지나드디어 일세일원제 이전 마지막 연호인 게이오에 들어섰다.남은 건 삿쵸동맹과 사쓰도맹약, 2차 조슈 정벌, 삿쵸는 영국-막부는 프랑스와 손을 잡는 정세,그리고 대정봉환에 대한 설명뿐이다.그 다음부터는 이제 메이지이다. 이 부분으로 넘어가기 전에, 앞으로 줄곧 다뤄야하지만 설명이 미흡했던 인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여기 언급되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와 대정봉환을 언급함에 있어 빠져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우선 사쓰마이다.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사쓰마번사로 막말 사쓰마 번정을 관할한 존황양이파 인사이다.존왕양이파이기에 유배도 다니고 실각도 하고 고생했지만그가 없이 사쓰마번은 설명이 되지 못한다.사쓰마번의 중신이었기에 사쓰마번과 관련된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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