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법명 고뇨(鏡如)
교토에 있는 니시혼간지의 주지로, 그의 처가는 고셋케 중 하나인 구조 가문이다.
그의 처 오타니 가즈코의 언니가 구조 사다코이고, 그녀의 시호는 데이메이 그러니까
다이쇼 덴노의 황후이다.
교토의 주요 사찰세력 중 하나인 니시혼간지의 주지를 담당하는 가문이니 공가와의 연계야 그리 이상하지는 않겠다.
이렇게 뒷배가 탄탄하니 그는 1902년부터 영국 탐사단과 함께 신장, 중앙아시아 등지로 트레저헌팅을 다녔다.
인디아나 존스 덕분에 미화될 여지가 있겠지만 이 당시의 트레저헌터는 그냥 도굴꾼이다.
저 시절에 북아프리카-중앙아시아-중동 일대로 유럽인들이 트레저헌팅을 다녔고
약탈의 성과는 현재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등에서 전시 중이다.
1912년까지 세차례 트레저헌팅을 다녀온 오타니 고즈이는 효고현에 별장을 짓고
그곳에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트레저헌팅 탐험의 비용이 막대했기에 이를 전부 부담한 니시혼간지는 재정문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니시혼간지의 주지로서 오타니 고즈이는 자신의 약탈해 온 유물을 판매할 수 밖에 없었다.
오타니는 여러 곳에 유물을 판매했고, 그렇게 판매한 곳 중 한 곳이 바로 광산재벌 구하라 후사노스케였다.
구하라 후사노스케는 평안도에 제철소를 짓기 위해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로비해야 했고,
그 로비에 오타니의 유물을 이용한다.
그렇게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구하라 후사노스케로부터 받은 뇌물이자 유물은 조선총독부에 보관되었고,
그 유물은 2차대전과 한국전쟁의 화마를 피해 조선총독부에 보관되어있다가
중앙청 해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어, 현재도 용산에 남아있다.
그 덕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유물 컬렉션은 그 퀄리티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가보면 대체 이런 게 왜 우리나라에 있지 싶은 게 많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유목민족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