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어릴 적에 읽었다는 소설이라고 해봤자 해리포터 시리즈, 트와일라잇 시리즈, 로버트 랭던 시리즈가 전부이고,
이 중 로버트 랭던 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는 완독하지 않았다.(해리포터는 영화로 완독)
어릴 적 유행했던 게임 소설들, 라노벨도 읽지 않았거나 몇페이지 읽고 닫은 게 전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채식주의자를 읽은 이유는 시에라 소사이어티 때문이었다.
굳이 북클럽점선면이 아닌 다른 원정대로 전환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들어간 지 얼마 안되어 일단은 굳이 바꾸지 말자는 심리가 강했고,
다른 하나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를 허세용 교양으로 읽어보자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역시 이런 소설은 안읽는 게 낫긴 했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세개의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1장인 '채식주의자', 2장인 '몽고반점', 3장인 '나무 불꽃'.
그리고 각 장의 분위기와 느낌, 그리고 각 장의 화자에 대한 내 평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장: 건조함-방관자(정 서방)
2장: 역겨움-위선자(형부)
3장: 축축함-보호자(인혜)
그리고 이 모든 평가의 원인이자 이 모든 평가를 내재하는 인물이 바로 영혜였다.
1장에서 영혜는 한번의 꿈 이후 모든 행동과 언행이 건조해졌다.
자신의 행동이 유발할 어떤 효과도 감안하지 않았고, 주변인에게도 점차 건조하게 그리고 이를 넘어 과도하게 대응했다.
소설에서는 정 서방이 영혜에 대해 미비한 행동을 한 듯 나오지만, 영혜 역시도 미비했음은 동일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말에서 영혜가 동박새를 죽인 결과는 그 미비함이 어떻게 다음 장의 위선으로 넘어가는 지를 보여주는 모순적 장치라고 생각된다.
2장에서 영혜의 모든 행동은 방관자를 넘어 공범에 가까웠다.
그녀는 형부의 모든 제안을 거부할 수 있었고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형부의 포르노그라피 촬영에 동조한 것은 다른 이가 아닌 영혜 본인이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협박이나 무력은 없었다.
그리고 영혜는 이를 통해 심적 안정과 정신적 성장을 보이는 데 이는 상당히 위선적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2장의 영혜 역시 형부처럼 역겨운 위선자에 불과했다.
3장의 영혜는 인혜가 제공한, 정신병원으로부터의 모든 조치를 거부했다.
정신병원을 탈출하기도 했고 거식증세로 그 어떤 것도 먹지 않으며 물구나무를 서는 등 자신을 소모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 행동은 모두 인혜의 우울한 언행과 행동을 만들어 작중을 더더욱 축축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그리고 인혜의 과거회상을 통해 인혜와 영혜는 서로 보호자인 동시에 보호받는 위치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하여 3장의 영혜가 보호자로 행동한 부분은 조금도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영혜를 이해할 수 있었는가?
분명 영혜의 행동은 과거부터 이어진 억눌린 무언가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어 그 원인은 가부장적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영혜를 물었다가 도축된 개 때문일 수도 있으며,
작의 화자인 정 서방, 형부, 인혜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무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이 소설의 주제의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영혜의 행동이 이해 가능하고 납득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런 철학적 해석과 주제의식으로 인해 이 소설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있어 필체와 문장력은 마음에 들었다. 괜히 노벨상 수상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줄거리에서 답답한 부분이 있고 철학적 되새김질을 반복해야 하는 점이 우울할 뿐이다.
역시 순수문학은 잃을 게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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