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여론과 서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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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정한론 논쟁 이후 낙향한 정한파들은 전반적으로 오쿠보 정권과 메이지 신정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조선 정벌이라는 주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 불만족스러웠을 수도 있고,사족과의 연계를 주장했기에, 낙향 이후 사족들의 불만에 호응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겠다. 정한파들 중에는 이토 신페이처럼 적극적인 무력 저항을 추진한 사람도 있었고,사이고 다카모리처럼 배후에서 조용히 준비하던 사람도 있었지만모두가 무력을 기반으로 정권을 뒤집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1874년(메이지7) 이타가키 다이스케와 고토 쇼지로를 중심으로 민선의원설립건백서가 정부에 제출되었다.후쿠이번사였던 유이 기미마사, 애국공당을 결성하기 전의 에토 신페이 등 신정부의 중역들이 참여했기에이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민선의원설립건백서의 원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