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일본의 사회주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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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나카에 조민(中江兆民)도사번 출신으로 도사번의 파견 유학생이 되어 나가사키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으며,그 시기 나가사키에 머물던 사카모토 료마의 휘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썰이지만 료마의 담배를 심부름을 했다나 뭐래나 프랑스어가 가능했던 덕인지 이와쿠라 사절단에 유학생 자격으로 참여했으며그대로 프랑스에서 유학했다.그게 이 인물의 특징을 만든 가장 큰 계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1870년대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퇴진과 함께 새로운 자유주의가 휘몰아쳤고이는 분명 유학생 나카에 조민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게다가 프랑스는 주요 자유주의 사상가를 배출한 국가이자 자유주의 혁명의 시초격인 국가였다.이런 곳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귀국 후인 1882년(메이지15)나카에 조민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번역한..
메이지 후반의 정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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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시간을 조금 돌려서 메이지 후반부의 정치 이야기를 해보겠다.1900년대 초반 일본의 정계는 네개의 파로 나뉘었다고 볼 수 있겠다.하나는 초연주의 번벌파.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사이고 주도, 마쓰카타 마사요시 등의 막말기 번사들이 주도한 파벌이다.당시 일본정계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았던 파벌이며,추밀원, 귀족원, 육해군을 장악해 정치적 영향력 역시 가장 뚜렷했다.이들을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같은 번벌파뿐이었다.정당활동을 극혐했으며, 자유민권운동 자체를 혐오했다.  입헌정우회의 탄생1898년(메이지31) 11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총리에 내정되면서 2차 야마가타 내각이 출범했다.내각 내에는 번벌파가 꽉꽉 들이찼으며, 야마가타답게 주요 안건들은 전반적으로 통과되었다.그래mtw3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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