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개척사와 메이지 14년의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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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홋카이도(北海道). 에도시대까지는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린 곳으로, 아이누인의 땅이다.이곳이 일본의 영토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부터로,1599년(게이초4) 가키자키 요시히로가 지금의 하코다테에 마쓰마에번을 설치하고 성을 마쓰마에로 바꾸면서부터였다.이후 러시아의 남하를 대비해 막부직할령이 되기도 했고,러시아와의 영토분쟁을 대비해 홋카이도를 넘어 가라후토(사할린), 치시마(쿠릴열도)까지 탐험과 측량을 진행하기도 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일본영토였다기 보다는,일본의 권한 하에 있는 아이누인의 땅에 가까웠다.일본영토로 완전히 편입된 계기는 하코다테 전쟁으로,보신전쟁 말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에조 공화국을 설립했고, 이후 신정부군에게 항복하며 완전한 일본영토가 되었다.에조치가 아닌 고키시치도의 권역..
보신전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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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제외한 현 일본 영토 중 3분의 2가 신정부에 가담했다.그리고 에도 막부마저도 정권 유지 및 저항을 포기하고 에도 성의 문을 열어버렸다.이제 남은 번과 군대에게 선택지는 버티고 저항할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둘 중 하나였다. 아이즈번과 나가오카번은 조슈와 사쓰마만큼은 아닐지라도 서양 무기와 전술 도입에 적극적인 번이었다.그리고 아이즈번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생아 호시나 마사유키 가문의 영지로,가문의 기치 자체가 막부 수호인 곳이다.여기가 싸움 한번 없이 항복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다.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도호쿠 열번들이 아이즈번과 쇼나이번의 탄원을 해주자고 주장한 세라 쇼조가 천주되기도 했다.우선 에노모토 다케아키, 오토리 게이스케, 히지카타 도시조 등은 닛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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