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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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우장이 넘어가면서 요동과 산해관 사이 그 모든 군사적 방해물이 사라졌다.산해관에서 청이 마지막 발악이야 하겠지만, 주력군이 무너졌으니 결과는 뻔하고, 그 다음은 북경이다.북경에 있는 청 조정이 도망칠 시간도 부족했다. 산동에서 북진하는 일본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갈 곳도 성도가 최선인데, 지구전으로 가는 것 자체가 수모였다.아니 운 나쁘면 가다가 잡힌다. 결국 청은 종전협상을 제의하며 항복의지를 보이게 되었다.근데 일본은 싫대.북경 먹을 거고 청은 뒤지래. 이토 히로부미와 무츠 무네미츠는 전쟁을 끝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그냥 이참에 청을 부숴버리자는 생각이었다.그러니 청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공친왕이나 이홍장이 직접 일본에 오지 않는 이상 협상은 없으며,와도 협상따위 질질 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그..
조약개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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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조약개정 3조약개정 2조약개정 1이와쿠라 사절단대정봉환과 메이지 덴노의 즉위 사실은 당연히 외교관계가 설정된 모든 국가에 전달되어야 할 사항이었고,비교적 가까운 조선의 경우 금방 보낼 수 있었지mtw31082.tistory.com3편은 여기로 조약개정에 한정되지 않고 2차 이토 내각의 청일전쟁 이전 외교 활동을 다룰 것이다.물론 핵심은 영일통상항해조약이다.부제목은 '조약개정의 완성'정도가 좋겠다.정한론 논쟁이고, 임오군란 이후 재점화된 정한론 열풍이건,방법론에 차이가 있었을 뿐 조선을 장기적인 점령대상으로 본 건 번벌파와 민권파가 동일했다. 1892년(메이지25) 2차 이토 내각이 출범했다.2차 이토 내각은 출범과 동시에 국회를 장악했고 선거 간섭으로 번벌파에 반발하던 민권파를 회유하려 노력했는데,이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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