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의 경제공황과 해외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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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일본의 산업 혁명은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도 성공적이었다.1884년(메이지17)부터 관영공장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민간기업에 공장을 불하했는데,이는 오히려 민간기업과 자본의 성장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해원대를 기반으로 한 미쓰비시 상사는 해운 사업으로 대박이 났고,소매업으로 시작한 미쓰이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민관합동 운수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은 영원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1890년 일본에 경제공황이 들이닥쳤다.마쓰카타 재정으로 시작된 디플레이션 및 증세의 역효과는 시간이 지나며 퇴색되었지만기업체들의 성장과 무역량의 증가로 점차 일본 경제는 세계경제의 일부로 완전히 흡수되었다.그리고 이 부분이 문제였다.미국에서 시작된 대불황의 여파가 일본에 덮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보신전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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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제외한 현 일본 영토 중 3분의 2가 신정부에 가담했다.그리고 에도 막부마저도 정권 유지 및 저항을 포기하고 에도 성의 문을 열어버렸다.이제 남은 번과 군대에게 선택지는 버티고 저항할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둘 중 하나였다. 아이즈번과 나가오카번은 조슈와 사쓰마만큼은 아닐지라도 서양 무기와 전술 도입에 적극적인 번이었다.그리고 아이즈번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생아 호시나 마사유키 가문의 영지로,가문의 기치 자체가 막부 수호인 곳이다.여기가 싸움 한번 없이 항복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다.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도호쿠 열번들이 아이즈번과 쇼나이번의 탄원을 해주자고 주장한 세라 쇼조가 천주되기도 했다.우선 에노모토 다케아키, 오토리 게이스케, 히지카타 도시조 등은 닛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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