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을 달자면
나의 12월 18일은 32시간짜리 하루였다.
어쩌다보니 친구와 이탈리아 여행을 약속하게 되었고
시간이 부족해 속전속결로 항공과 호텔까지 준비하게 되었다.
준비과정은 여기 안 적을 것이니 생략하고, 기왕 환승할 거 레이오버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탈리아 여행의 첫날은 이스탄불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스탄불도 로마니까. 제2로마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터키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터키보다는 '튀르키예'가 맞는 표현이 되었지만 난 익숙하지가 않아서
개명한 내 친구도 개명 전 이름으로 부르는데 외국 정도야.
맨날 저가항공사만 타다가 비싼 회사 비행기를 타니 정말 좋았다.
좌석에 스크린이 있고, 음료를 제공하며, 기내식을 준다.
기내식으로 유명한 터키항공답게 엄청 맛있었고 기내식에는 소금과 후추가 같이 나온다.
비행 중이라 밋밋할 수 있는 기내식에 소금 조금과 후추를 뿌리면 진짜 졸맛탱 그 자체였다.
게다가 장거리 비행이라고 어메니티를 주는데, 그 안에 양말과 슬리퍼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가 대중교통에서는 정말 미칠듯이 피곤하지 않은 이상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장거리 비행에서는 주기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풀어줘야 한다. 안그러면 다리가 간다.
그런데 내가 앉은 열에서 나만 안자고 있었다. 이럴까봐 내가 최대한 복도쪽에 앉은 것인데 말이다.
어찌저찌 일어나 한시간 화장실 앞에 서 있기도 하고 그랬지만, 결국 다리가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참고로 비행기는 한국시간 기준 00시10분에 출발해 터키시간 기준 5시 50분 즈음에 착륙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친구가 길을 잃어 시간이 좀 지체되기는 했지만
7시 50분에 버스(하바이스트)를 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이동했다.
교통카드 하나를 사서 친구와 같이 탔다. 참고로 두번 찍으면 두명 타고 이런게 되며, 이스탄불 모든 대중교통에서 사용가능하다.
물론 하바이스트만 탄다면 카드도 가능하다.
버스에서 본 이스탄불의 풍경은 신기했다.
고속도로 옆 호수에 물안개가 펴있고, 8시는 되어야 해가 뜨기 시작했으며,
길가에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보였다. 이탈리아 여행답게 제2로마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트램을 타려하니, 교통은 복잡하고 개판이었으며(응급차에 치일뻔함)
트램은 사람이 너무 붐벼 두대 보내고 겨우 탔다.(출근시간대 배차 간격 1분!)
트램이 너무 사람이 많아 일단 그랜드 바사르를 구경하고 아침을 먹은 후 하기아 소피아 방향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그랜드 바사르에는 양탄자, 체스판, 귀금속, 향신료 등을 팔고 있었고,
이 중 일부는 정말 '돈이 있었다면 샀겠다' 싶은 것들도 있었다.(예를 들어 체스판)
여기에 더해 한국어로 행해지는 호객까지
아침으로는 근처 카페에서 터키식 커피와 카이막, 빵을 주문해서 먹었다.
터키 여행은 방향성을 찍먹으로 잡았기에, 그냥 유명한 것만 즐기고 말자고 생각했고
그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카이막이었다.
그 와중에 길거리에서 다들 담배를 피는데, 나는 흡연자지만 내 친구가 비흡연자라 꽤나 고생했다.
아 카이막과 빵은 물론 개인적으로는 커피도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먹은 첫 에스프레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쓰긴 썼어.
그래서 물도 같이 나왔다.
이스탄불은 유명한 개와 고양이의 도시이다.
키우는 건 아닌데, 뭐랄까 다같이 길거리를 떠도는 개와 고양이를 보호해준다.
이유는 들었는데 까먹었다. 츠나요시 쇼군의 쇼루이와레이노레이 비슷한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 개와 고양이들이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이는 가게 앞과 주요 관광지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하기아 소피아처럼 말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10분 좀 안되게 걸으니 눈 앞에 하기아 소피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실제로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웅장했다.
이러다가 이탈리아에 막상 가니 이만한 임팩트를 못받아 아쉬우면 어떡하지 싶어질 정도였다.
물론 기우였지만 그만큼 하기아 소피아의 임팩트는 굉장했다.
내부의 모자이크화, 회칠을 겨우 벗겨낸 성화, 아랍어 서예판, 엔리코 단돌로의 무덤
그리고 고양이까지
"진짜 여기는 돈 내고 갈만하다. 평생 한번 갈만한 곳이구나."라는 걸 제대로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화합을 잘했니 이런 건 아니지만, 그런 감탄을 해도 이해는 되는 곳이었다.
아쉽게도 최근 에르도안이 하기아 소피아를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돌리면서 2층만 구경하게 되었다. 그래도 충분히 이쁘다.
하기아 소피아 옆으로는 블루모스크가 보이고, 하기아 소피아 뒤로는 하렘으로 유명한 톱카프 궁전이 있는데, 시간 상 생략했다.
그래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궁전으로 유명한 톱카프는 찍먹 정도는 했다.
입구만 들어갔다는 뜻이다.
입구 너머에 저 멀리 아시아지구가 보였다. 보스포루스 해협 너머, 우리가 사는 그 대륙인 것이다.
어렸을 때 댄 브라운의 로버트 랭던 시리즈 중 인페르노를 읽고 피렌체를 내 버킷리스트에 넣어놓은 것이었기에
이스탄불 중 이 인페르노에 나온 곳을 가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 중 결말의 그곳, 당시 소설을 읽으며 이런 곳이 실존함에 놀랬던 그곳
이스탄불의 지하 저수조로 사용되었던 물의 궁전 예레바탄 사라이로 갔다.
로마식 기둥들과 그 사이에 고여있는 물, 그리고 그 바닥에 뚜렷한 로마식 벽돌바닥,
끄트머리로 가면 볼 수 있는 메두사까지.
기둥의 자국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예레바탄 사라이의 연식을 느끼게 해줬고, 동시에 그 신비로움을 증폭시켰다.
여담으로 하기아 소피아와 예레바탄 사라이
이 두 곳은 패스트트랙으로 틀룩에서 입장권을 예약한 후 입장했다.
하기아 소피아는 모르겠고, 예레바탄 사라이는 패스트트랙이라 정말 편했다.
마침 그 때 터키 초딩들 현장학습와서 줄이 꽤 길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부는 시끄럽고, 터키 초딩이랑 인사하며 떠들고 그랬다.
갈라타 다리쪽으로 이동해 점심으로 고등어 케밥을 먹었다.
지금 찾아보니 에미노누 광장이라는 곳이었다.
하나만 먹으면 배가 안 찰거라 생각해 다른 케밥을 먹으려 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만 먹었음에도 배가 찼다.
마실거로는 투르크 콜라를 사서 마셨는데, 맛만 보면 뭐 그냥 코카콜라랑 다를 게 없다.
이래서 요즘 코카콜라 주가가 오르지를 않나?
위 사진의 완성된 핫도그 같은 게 우리가 시킨 고등어 케밥인데,
안에 향신료 맛과 고등어의 풍미, 그리고 채소와 소스가 잘 어우러져 맛있었다.
이후 에미노누 광장에서 터키 아이스크림도 원조 버전으로 당해보고 재밌었다.
시간이 좀 남아 카페에 들어가려는데, 생각보다 다리가 너무 아팠다.
일단 카페로 가서 터키식 차를 한잔했는데, 사실상 그냥 쉬었다.
비록 찍먹이었지만, 정말 알차게 돌아다녔고, 아쉬운 것이라면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다리 상태를 계산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름 많이 걷기는 했지만, 2만보도 안되는데 2만보 넘게 걸은 듯한 다리 상태로 악화되어 있었고,
이유를 생각하며 통증을 느껴보니 이건 많이 걸어서 그런 것보다는 많이 앉아있던 탓이 컸다.
시간이 다되어 공항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이스탄불 공항 입구는 출입국동 상관없이 무장경찰이 지키고 있으며,
들어가려면 짐 검사를 해야한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비행기표는 애초에 인천에서 받았음)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이스탄불 공항은 소문대로 크고, 물가가 파탄나 있었다.
이 날 이스탄불에서 쓴 식비를 다 합쳐도 2만원이 안된다.
카이막, 커피, 케밥, 차, 과자, 아이스크림 다 합쳐도 인당 만원이 안된다는 것이다.
근데 공항에서 마신 카라멜 마키아토가 한잔에 만사천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스탄불은 전반적으로 만독스러웠다.
구시가지 지역은 관광지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호객도 적고(그랜드 바사르도 호객이 있었을 뿐 심하지는 않았다)
전반적인 물가도 싸고 치안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 강했다.
(치안은 그때 나랑 대 친구가 거의 뭐 풀무장 상태로 가방을 몸에 붙이고 다녀서 그런 거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재밌었다. 인종차별은 당연히 없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모두 느낄 수 있으며, 이국적인 색채도 강한 도시
먹을 거 많고 할 것도 많은 도시
사람이 붐벼서 그렇지 생각보다는 시내 교통도 나쁘지는 않은 도시
나라면 이스탄불 주변 사람에게 강력 추천할 듯 하다.
단점이라면, 흡연자(전담)도 적응안되는 길빵 정도
근데 이건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비행기를 타고 로마에 도착했으며, 기차로 로마 테르미니로 이동해 숙소에 짐을 풀었다.
부제 그대로, 시차로 인한 이득을 보며, 한국시간 기준 00시 10분에 시작한 일정은 한국시간 24시가 넘어서 종료되었다.
물론 이탈리아시간 기준 하루는 아직 안 지났으니, 한국 시간 기준 32시가 되어서야 나는 12월 19일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