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한 내각
·
일본 근현대사/메이지
한국인이라면 좋아할리가 없는 그 인물, 이토 히로부미.당연히 나 역시도 이 인물에 호의를 보이기는 싫지만, 메이지시대에 있어 이 인물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그리고 그보다도 더욱 강조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 감각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모든 행적이 성공 혹은 성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3차 이토 내각에서 이토는 아군 하나 없이 내각을 구성했고, 결국 얼마 안가 사임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의 정치 감각을 고평가하는 이유는, 그 이후의 행적이 과감하고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자유민권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일본의 정치계는 메이지 신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번벌파와자유민권운동을 주도하는 민권파(혹은 민당파)로 나뉘었다.민권파는 대동단결운동 이후 이타가키 다이스테와 고토 쇼지로를 중심으로 한 자..
자유민권운동
·
일본 근현대사/메이지
공의여론과 서남전쟁정한론 논쟁 이후 낙향한 정한파들은 전반적으로 오쿠보 정권과 메이지 신정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조선 정벌이라는 주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 불만족스러웠을 수도 있고,사족mtw31082.tistory.com  조슈삼걸의 시대대략 일년여의 시간 동안 메이지 유신을 이끈 세명의 인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가 모두 명을 달리했다.이와쿠라 도모미와 산조 사네토미를 제외하면, 소위 '유신의mtw31082.tistory.com이 두 글에서 이어집니다. 유신삼걸이 죽은 후 정권은 이토 히로부미와 오쿠마 시게노부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이토는 문관관료들과 교류하며 조슈번 출신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던 인물이었고,오쿠마는 대장성에서 활동하며 메이지 초기의 국가재정을 정비해..

320x10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