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주의, 사회주의, 요시노 사쿠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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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다이쇼
어느덧 다이쇼시대도 반 이상 적어내게 되었다.1921년(다이쇼10)의 하라 다카시 총리 피습사건까지 적었고, 다이쇼시대가 1926년에 끝이 나니,반은 진작에 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하라 내각은 다이쇼시대에 일종의 전환점 역할을 했다.원했건 아니건, 하라 내각이 있던 기간 동안 수많은 정치적 변곡점이 있었다.입헌정우회가 기존의 사이온지 긴모치 계열에서 하라 다카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중심으로 전환되었고,얼마 안가 다나카 기이치가 입당하면서 정우회에 군국주의 성향이 입혀지기 시작했다.야마가타파 주요 군인들이 노쇠하여 요직을 떠났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마저 실각하면서 육군 조슈파가 힘을 크게 잃는다.초연주의 번벌파의 새로운 중심축은 해군과 귀족이 되었지만,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대두되지는 않았다.외교적으로도..
메이지 후반의 정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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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시간을 조금 돌려서 메이지 후반부의 정치 이야기를 해보겠다.1900년대 초반 일본의 정계는 네개의 파로 나뉘었다고 볼 수 있겠다.하나는 초연주의 번벌파.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사이고 주도, 마쓰카타 마사요시 등의 막말기 번사들이 주도한 파벌이다.당시 일본정계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았던 파벌이며,추밀원, 귀족원, 육해군을 장악해 정치적 영향력 역시 가장 뚜렷했다.이들을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같은 번벌파뿐이었다.정당활동을 극혐했으며, 자유민권운동 자체를 혐오했다.  입헌정우회의 탄생1898년(메이지31) 11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총리에 내정되면서 2차 야마가타 내각이 출범했다.내각 내에는 번벌파가 꽉꽉 들이찼으며, 야마가타답게 주요 안건들은 전반적으로 통과되었다.그래mtw31082...
일본 최초의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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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헌법 제정이 완료되었고, 국가 기관 및 내각에 대한 개편이 완료되었다면 그 다음은 국회의 설립일 것이다.메이지 덴노 역시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고, 국회 개설을 위한 총선거를 명령하려했는데,오쿠마 시게노부 외무대신이 폭탄테러를 당하고 구로다 내각이 총사임하며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1889년(메이지22) 말 산조 임시내각을 대체하여 제국외희 개설을 위한 총선거를 위해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내각총리대신에 내정되었다.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누구인가.번벌파 무관 정치인의 상징이고, 정당 없이 의견을 통일시키고자 한 초연주의의 대표자아닌가.즉 3대 총리에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내정되고, 그를 중심으로 총선거를 준비한다는 건 민권파 입장에선 부정적인 소식이었을 것이다. 1880년말 민권파는 이미 정치 참여를 위해 그 준..
홋카이도 개척사와 메이지 14년의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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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홋카이도(北海道). 에도시대까지는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린 곳으로, 아이누인의 땅이다.이곳이 일본의 영토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부터로,1599년(게이초4) 가키자키 요시히로가 지금의 하코다테에 마쓰마에번을 설치하고 성을 마쓰마에로 바꾸면서부터였다.이후 러시아의 남하를 대비해 막부직할령이 되기도 했고,러시아와의 영토분쟁을 대비해 홋카이도를 넘어 가라후토(사할린), 치시마(쿠릴열도)까지 탐험과 측량을 진행하기도 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일본영토였다기 보다는,일본의 권한 하에 있는 아이누인의 땅에 가까웠다.일본영토로 완전히 편입된 계기는 하코다테 전쟁으로,보신전쟁 말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에조 공화국을 설립했고, 이후 신정부군에게 항복하며 완전한 일본영토가 되었다.에조치가 아닌 고키시치도의 권역..
자유민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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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공의여론과 서남전쟁정한론 논쟁 이후 낙향한 정한파들은 전반적으로 오쿠보 정권과 메이지 신정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조선 정벌이라는 주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 불만족스러웠을 수도 있고,사족mtw31082.tistory.com  조슈삼걸의 시대대략 일년여의 시간 동안 메이지 유신을 이끈 세명의 인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가 모두 명을 달리했다.이와쿠라 도모미와 산조 사네토미를 제외하면, 소위 '유신의mtw31082.tistory.com이 두 글에서 이어집니다. 유신삼걸이 죽은 후 정권은 이토 히로부미와 오쿠마 시게노부를 중심으로 개편되었다.이토는 문관관료들과 교류하며 조슈번 출신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던 인물이었고,오쿠마는 대장성에서 활동하며 메이지 초기의 국가재정을 정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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