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삼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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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대략 일년여의 시간 동안 메이지 유신을 이끈 세명의 인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가 모두 명을 달리했다.이와쿠라 도모미와 산조 사네토미를 제외하면, 소위 '유신의 첫 세대'로 부를만한 정치 거물은 사라져버렸고,그 자리르 채운 것은 40대 초반, 30대 후반의 조슈 젊은 인사들이었다.그 중에서도 중심 역할을 해준 것은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다.유신삼걸이 그랬듯, 중심이라 할만큼의 존재감을 보인 건 이토 혼자만이 아니었다.도사번 출신의 이타가키 다이스케와 고토 쇼지로도 있었고, 사가번 출신의 오쿠마 시게노부도 있었지만,어떨 때에는 이토와 손을 잡고, 어떤 때에는 이토와 경쟁하며오쿠보 도시미치 사후 메이지 일본의 정권 핵심으로 그 존재감을 보여 준 세명..
막말의 조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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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현대사/메이지 이전
혼슈 최서단의 번 나가토(長門), 지금의 야마구치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편의상의 명칭인 조슈(長州)라는 이름으로 보통 불렸다.다이묘 가문은 이쓰쿠시마 전투 이후 주고쿠의 패자가 되었던 모리 가문이다.모리 데루모토는 노부나가 포위망의 일원이었고, 무로마치 막부가 축출되자 요시아키 쇼군을 보호했으며,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대에도 2인자의 자리를 명확히 지켰다.세키가하라 전투에 서군으로 참여해야 했던 탓에 이후 영지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으며,그 대신 나가토국의 다이묘로 생존하게 된다.중앙과는 거리를 좀 두었고, 요시다 쇼인 등 유능한 인사들을 기반으로 번정을 운영했다.그리고 요시다 쇼인 사후에는 쇼인에게 수학했던가츠라 고고로(기도 다카요시),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그리고 ..
요시다 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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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면 원래 안세이 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지만지금 이 사람 언급 안하면 타이밍을 완전히 놓치니, 언급을 하고 가야 하겠다. 요시다 노리가타. 호인 쇼인(松陰)으로 유명하다.조슈번 출신이자 조슈번을 대표하는 영재로, 19세때부터 번교의 사범으로 무사들을 가르친 인물이다.난학과 양명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로, 한문 암기 등에 대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아편전쟁 등 세계정세가 불안해지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쇼인은나가사키로 이동해 서양의 함선과 문물을 직접 조사하고 수학했으며,에도로 이동하여 사쿠마 쇼잔과 교류하기도 했다.이러한 활동의 결과 쇼인은 조슈번주에게 소큐시겐(将及私言) 제출하기도 했는데,대충 막부를 토벌하고 왕정으로 복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85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