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전철역의 위치가 참으로 애매하다.
그러니 대중교통에 의존하면서도 걸어야만 했던 기억이 강하다.
2022년 10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일본 개방을 선언하자마자 일본에 친구를 만나러 비행기를 끊었다.
그 때 오사카를 가면서 겸사겸사 친구랑 교토도 들렸는데, 그 때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당시 한큐를 타고 가와라마치로 갔고,
첫 목적지인 니조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충 15분 정도 걸어야 나오는 교토시청앞역으로 가야했다.
과연 15분이었을까? 체감은 30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은데
근처 어디에서 모자도 사고, 밥도 먹고 하다가 교토시청앞역으로 걸어가던 중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니 료마공! 이런데서 뵙구려!
옆에 있던 친구는 일본 살지만 일본사 아무것도 모른다. 그 얘기는 뭐냐?
It's 잘난척 TIME!
잘난척할 생각에 신이 나서, 사카모토 료마라는, 일본 근대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인물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려 하는데,
바로 옆에 팻말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과거 간장 가게인 오미야(近江)가 있었던 곳이고, 여기서 1867년(게이오3) 음력 11월 오미야 사건 그러니까,
사카모토 료마와 나가오카 신타로가 살해당한 것이다.
당시 대정봉환이 1개월여 지난 상황이었고, 존황양이파이자 도막파였던 사카모토 료마는 평생은 좌막파의 위협을 받고 살았다.
그런 와중에 좌막파가 득실득실한 교토에 자주 머무른 건 대단하고도 신기한 일이긴 하다.
료마가 원래 거처로 삼은 곳은 데라다야라고 하는 곳이었는데,
1866년(게이오2) 여기서 료마가 후시미봉행이 보낸 체포조를 오히려 료마 측에서 습격하는 데라다야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거처를 여기저기 옮기다가 해원대 대원 무츠 무네미츠의 소개로 오미야에 머물렀다.
하지만 1867년 나가오카 신타로와 사카모토 료마는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고, 그렇게 사망하고 만다.
오미야 사건으로 존황양이파는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인 료마를 죽인 범인 색출하려 했고,
일단 분노에 휩싸여 우선 당시 도막파의 행동대장 역할을 한 준군사조직 신센구미(新選組)를 유력 용의자로 지정했다.
1869년(메이지2) 보신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신센구미와 교토 미마와리구미(見廻組) 대원의 증언을 통해
이 암살을 사주한 것은 교토 미마와리구미의 이마이 노부오인 것으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정확한 범인과, 어떻게 사카모토 료마가 오미야에 머무른 사실을 알았는 지 등의 정황은 현재까지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그 덕에 별별 음모론이 나돌지만, 어쨌든 아무도 진실을 모른다.
舊오미야-사카모토 료마, 나가오카 신타로 조난지는 현재 돈키호테 시조가와라마치점 바로 옆에 있으니
료마에 관심있는 사람은 가보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교토시청앞역으로 가고 나서야, 아니 플랫폼에 들어가서야, 아까 샀던 모자를 식당에 두고 왔다는 대참사를 인지했다.
내 친구는 일단 환불이 안되니 니조역으로 보내고, 나는 패스라서 무료니 상관이 없어 모자를 찾으러 나왔다.
가던 중 자꾸 나무 팻말이 보이니, 또 뭐 있는 거 아니냐며 조소하던 중
이번에는 돌로된 비석에 "증 정 1위"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사를 공부한 나기에, 정 1위는 태정대신, 우대신, 좌대신 세개뿐인 걸 알고 있으며, 죽어서 이걸 받을 사람이면
무조건 네임드 역사인물이 분명했다.
후지와라의 유명인이거나, 막부 혹은 전국시대의 유명 무사일 가능성이 높고, 그 후보마저도 적다.
자 그럼 저 비석의 '증 정 1위' 밑에 적힌 한자 네자를 보도록 하자.
그렇다. 이 비석은 혼노지(本能寺) 앞에 있는 비석인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에도 시대에 재건한 혼노지로, 현재는 오다 노부나가의 무덤이 남아있다.
참고로 진짜 무덤은 아니다. 혼노지의 변으로 혼노지가 전소했고,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 역시 구별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유품과 흔적을 모신 가묘라고 알고 있다.
아니 아까는 료마더니 이번엔 오다야! 이러면서 나는 혼자 신나있었고, 모자 찾아서 니조성 가기 바쁘지만 굳이굳이 시간을 더 썼다.
친구한테 양해 안구한 건 덤. 물론 이해는 해줬다.
이렇게나 신나 있는데 뭐 어떻게 뭐라 해.
라고 생각하니 민폐인 감이 없지 않은 듯 하다. 그래도 니조성 잘 갔다왔다.
공교롭게도, 천하인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혼노지의 변 역시 일본사를 대표하는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왜 오다 노부나가를 죽였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전인 텐노잔 전투 직후, 아케치가 죽어버렸다.
천하인이라는 그 위엄에도 갑자기 죽어 사라졌으니, 오다의 죽음은 그 임팩트와 여운이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듯 하다.
그 덕에 혼노지의 변 역시도 별별 음모론에 휩싸여 있을 뿐이다.
오미야, 혼노지.
여기서 일어난 일들만큼, 미스터리한 우연으로 방문하게 된 곳들이었다.
여행에서 우연하게 생기는 해프닝들이 추억이 되고 재미를 주는데, 나에게 교토는 이런 식으로 추억과 재미를 주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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