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장관 혹은 여당의 중역이 총선에서 낙선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낙선하더라도 비례 석패율 구제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어찌저찌 중의원 의원직은 유지하곤 한다.
물론 비례 석패율로 구제되는게 명예로운 결과는 아니지만 의원직 유지가 어디겠는가.
그런데 50회 중원선의 결과로 1차 이시바 내각의 장관이 두 명이나 낙선하는 참사를 맞이했다.
게다가 공명당은 당대표와 부대표가 낙선하는 참극을 겪어야했고
새로운 공명당 당대표에 사이토 데츠오가 부임하면서 국토교통장관의 교체도 불가피해졌다.
이번 글에서는 1차 이시바 내각과 비교해 교체된 세명의 장관을 언급하겠다.
참고로 재선에 성공했거나 중원선에 참여하지 않은 참의원 소속 장관들은 전부 유임되었다.
법무장관에는 스즈키 게이스케(鈴木馨佑)가 내정되었다.
1977년생의 비교적 젊은 정치인이고 각종 부대신과 자민당 청년국장을 역임했다.
소속은 지공회로, 아소파 정치인이다.
농수산장관에는 에토 다쿠(江藤拓)가 내정되었다.
8선 의원이고 농림수산성 정무관과 농림수산부대신 등을 역임했다.
그의 부친인 에토 다카미 역시 농수산성 쪽에서 활동한 정치인이었으며, 부자가 모두 혐한으로 유명하다.
소속 파벌은 없으며, 그의 부친이 지수회 설립에 참여한 점 등을 감하면 구 니카이파 측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국토교통장관에는 공명당의 나카노 히로마사(中野洋昌)가 내정되었다.
1978년생의 비교적 젊은 정치인이며, 국토교통성의 관료로 오랜 기간 재직한 경험이 있다.
창가학회가 설립한 창가학원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하족으로 자민당 중역 중 고이즈미 신지로가 선거 참패의 책임으로 사임한 선대위원장의 경우
기하라 세이지(木原誠二)가 내정되었다.
참고로 구 굉지회, 즉 기시다파이다.
'일본 정치 > 레이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돈 논란은 국회의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0) | 2024.11.27 |
---|---|
103만엔의 벽 (3) | 2024.11.14 |
향후 일본의 정국은 어찌 될 것인가? (2) | 202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