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Renaissance)
유럽의 문화-학문적 개편을 의미하는 단어로
봉건적 중세 유럽과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의 근대 유럽을 이어주는 교두보이다.
사실상 그 신호탄은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었고,
동유럽과 중동에 모여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이 서유럽에 부활하기 위해서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이어주는 중간지점에 자리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고, 이로 인해 유럽의 돈이 모이는 곳으로 성장한 피렌체는
이를 기반으로 한 군사력과 자금력으로 르네상스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르네상스의 도읍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수많은 위인들을 배출했다.
그리고 이를 자랑하듯, 우피치 미술관의 1층 외벽에는 르네상스와 피렌체를 자랑하는 유명한 인물들의 석상이 장식되어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의 설계자이자 건축학의 아버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이다.그는 건축을 노동의 일부에서 떼와 학문과 결합함과 동시에 학문으로 집대성한 인물로
피렌체의 르네상스 건축물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르네상스의 시작이라 여겨지는 인물로, 이후 그의 제자들을 거치며 르네상스의 건축학이 정립되어갔다.
조토의 종탑을 지은 조토이다.
건축가이자 화가 겸 조각가로, 조르주 바사리에 의해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라 평가받는다.
조토 이전의 회화는 평면적이고 자연보다는 신화적 느낌을 강조했는데
조토는 처음으로 자연을 위주로, 입체적인 묘사와 채색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문의 황금기를 연 'Il Magnifico' 로렌초 디 메디치이다.
피렌체를 유럽 금융업의 메카로 만들었고, 그 자금력으로 교황과 사제들을 지원해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끼쳤다.
여기에 더해 수많은 에술가들을 지원했고, 심지어는 어린 예술가들을 발굴해 키워주기도 했다.
이런 로렌초 디 메디치가 발굴해낸 최고의 예술가가 바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노티이다.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누구냐고 한다면, 일말의 이견 없이 미켈란젤로를 언급할 것이다.
아쉽게도 그 앞이 공사 중이어서 우피치에서는 찍지 못했고 이 사진은 속초의 피노디아 미켈란젤로 뮤지엄에서 찍은 것이다.
메디치의 영광을 상징하는 예술가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은 건축가이자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만든 조각가이다.
르네상스 예술이라 함은 미켈란젤로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이라 봐도 충분하며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미켈란젤로와 그 제자들이 만들어갔다 봐도 무방하다.
한 문장으로 형용할 수 없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그의 직업을 단순하게 정의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공학, 예술, 건축, 해부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술적 의의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피렌체 근교의 마을 빈치 출신으로, 서자라서 성이 아닌 마을이름이 성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다 빈치 석상 우측 공사현장 안에 미켈란젤로 석상이 있다.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였다는데, 이걸 붙여놓네.
정치학에 있어 니콜로 마키아밸리의 이름을 배제할 수가 없다.
정치와 도덕성을 분리시킴과 동시에 실리를 강조한 최초의 인물로
그는 저서인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에 진상했고, 이후 군주론이 재조명되며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하기도 했다.
'최초의 정치학자'라 불러도 손색없으며,
'최고의 정치학자'라 해도 될 만큼 정치학에 있어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없다해도 무방하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나를 이 도시를 데려온 원인제공자, 단테 알리기에리이다.
그의 작품이 미친 영향력을 이탈리아의 대중언어를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만들었고,
지금도 이탈리아어의 시초를 단테의 문학작품에서 찾곤 한다.
유럽 문학사에 있어 셰익스피어와 함께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콜럼버스가 처음 도달했다고 여겨지는 그 대륙의 이름이 '콜롬비아'가 아닌 '아메리카'인 이유는 간단하다.
피렌체 출신의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이 대륙을 인도가 아닌 신대륙으로 첫 명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은 콜롬버스보다 더욱 유명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피렌체 공항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피렌체 아메리고 베스푸치 공항'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증명하고 천문학 연구의 기반이 된 인물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피렌체에서 성장했다.
망원경 개발, 목성 위성 발명 등등 그의 천문학적 발견은 지금도 유명하며,
선술했듯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고 천동설이 틀렸음을 증명해낸 사람이기도 하다.
사진을 못찾아서 그렇지 조르주 바사리의 석상도 있으며,
그 외에도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렇지 석상이 더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라면,
브루넬레스키의 석상이 없었다는 점 정도?(봤으나 브루넬레스키인지 못 알아본 것으로 추정)
그래도 충격적이기는 했다.특히 아메리고와 갈릴레오가 피렌체 출신인 걸 몰랐기에 이런 인물까지 배출되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러니 가히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도읍이라 할 수 있는 도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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