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일본의 행정/사법/입법/외교/경제/산업/군사/문화/학문 등 다양한 분야를 걸친,
그 성공적인 근대화 및 서구화를 함축한 단어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룩한 성공이며, 비유럽국가 중 유일하게 완벽한 성공 그리고 생존해 냈다는 점에 있어
학계에서는 '혁명'이라고 고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메이지 유신을 고평가하기엔 장벽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메이지 유신으로 이룩한 성과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제국주의화'이며,
일본을 제국주의 국가로 생존하게 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한일합병이기 때문이다.
즉 일제강점기라는 민감한 주제를 동반하면서 일본사를 논해야 하는데,
민족적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메이지 유신의 성과만을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요즘 뉴라이트니 뭐니 하는 사람들처럼, 오히려 이 부분을 부정하거나, 반박하여 메이지 유신의 성과를 설명하면
굉장히 쉽게 모순점이 나온다.
그 모순점은 나중에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다른 한 가지 장벽은 바로, '메이지 유신의 성과로 인해 이룩한 참사'이다.
모두가 잘 아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되겠다.
쏜 것은 미국이지만, 맞을 짓을 한 건 일본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원인을 논함에 있어 메이지 유신은 생략할 수 없다.
육해군과 군부의 책임은 뚜렷하지만 그 외 인사들의 행적을 분석하면,
소위 문관-관료 들은 2차패전 패배로 결말 짓는 데 있어 그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라고 강조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선술한 비유럽국가 중 유일하게 완벽한 성공 그리고 생존,
이것만 다루어도 왜 메이지 유신이 혁명인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사라진다.
따라서 메이지 유신을 논함에 있어 그 공과 성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감정적인 방향성을 제외하고, 메이지 유신의 공과 과, 성공과 실패를 분석해 아는 것은
일본이 왜 약육강식의 세계 정세에서 생존했는지, 왜 2차대전의 패전이라는 배드엔딩으로 끝나야 했는지,
이를 넘어 근대 일본의 영향 중 지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현재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는 근대 일본의 공과 과가 있는지,
이런 식의 여러 분석과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메이지 유신과 그 성과에 대한 중립적인 분석과 평가는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분석에 있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감정적인 면과 민족주의적인 면이 앞장 서야만 하는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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