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 도시미치. 유신삼걸 중 한명이며 메이지 신정부의 초기 정국을 관할한 사람이다.
슬하에 8남1녀(정실 사이에서는 4남1녀)를 두었으며, 1878년 기오이자카에서 암살당한 후 그의 가문은 장남인 도시나카가 이었지만,이후 오쿠보 가문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정치인이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마키노 가문에 양자로 들어간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 마키노 노부아키의 경우여러 내각에서 문부대신, 외무대신, 농상무대신을 역임하며일본근대사에서 언급해야할 이름이 되었다.
마키노 노부아키의 슬하에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그중 장녀 유키코가 외교관인 요시다 시게루와 결혼했다.요시다 시게루는 전전에는 영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동한 외교관이었으며,전후의 신 체제를 구축한 총리이자 현 일본 보수의 아버지라 부를만한 인물이다.
요시다 시게루의 3녀 가즈코는 아소 시멘트의 회장이자 정치인인 아소 다카키치와 결혼했으며,
그의 장남이 지공회의 회장이자 현 자유민주당 최고고문인 아소 다로 전 내각총리대신이다.그리고 3녀는 다이쇼 덴노의 손자인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과 결혼해 황족이 되어있다.아소 다로는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딸인 스즈키 치카코와 결혼했으며,스즈키 치카코의 동생이 환경장관 등을 역임했던 스즈키 슌이치 현 자민당 총무회장이다.
다시 요시다 시게루로 돌아가서,요시다 시게루의 사위 요시다 히로시는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사토 에이사쿠의 친척이다.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후 공직추방령으로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토 에이사쿠는 요시다 시게루에게 발탁되었다.사토 에이사쿠의 부친인 사토 히데스케가 결혼 후 처가성을 따랐고장남인 에이사쿠에게는 사토 성을 준 반면, 차남인 노부스케에게는 원래 성인 기시를 부여했다.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둘 다 총리를 역임했다.
기시 노부스케는 야마구치현을 대표하는 정치인 아베 간과 사돈을 맺고 싶어했고,딸인 요코를 아베 간의 아들인 아베 신타로에게 시집보낸다.아베 신타로는 기시 노부스케의 지원하에 정치적으로 성장했으며, 외무장관을 역임했다.아베 신타로의 인망아래 많은 보수본류 정치인들이 지원을 받았고,이는 아베 신타로의 두 아들에게 있어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아베 신타로의 차남 아베 신조는 이후 내각총리대신을 장기간 역임했으며,삼남인 기시 노부오 역시 다양한 장관직을 역임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베형제는 통일교 문제로 현재는 아무튼 정계에서 멀어진 상태이다.기시 노부오의 아들인 기시 노부치요가 현재 아베 가문이 독점하던 야마구치현에서 중의원 의원을 하고 있다.
오쿠보 도시미치가 원한 것은 아니겠지만, 차남을 마키노가의 양자로 보낸 결과무려 여섯명의 총리와 연관이 되는, 심지어 황족에 시집도 보내는 대규모의 정치가문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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