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당 연합이 확보한 의석 243석.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55년 체제를 끝마무리 짓기에는 한 단계가 남았다.
바로 '다음 총리를 누구로 할 것이냐'이다.
7당 연합은 한 개의 정당이 아닌, 여덟 정당의 연합체이다. 막말로 중의원 표가 7분할되면 미야자와 기이치는 총리에 유임된다.
자유민주당이 과반을 먹지 못했을 뿐, 다수당은 여전히 자민당이었기 때문이다.
중의원이 새롭게 꾸려진 후 새로운 총리를 배출할 선거를 진행할 일만 남은 상황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아보이는 정당은 일본사회당이었다.
7당 연합 중 가장 많은 의석(70석)을 보유했고, 전통의 야당이었기에 인지도도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과는 기본적으로 자민-사회의 양당제를 해체하기 위한 여론이 반영된 것이었고,
애초에 말이 70석이지, 40회 총선에서 일사당이 잃은 의석 수만 66석이다.
즉 일본사회당은 대승을 거둔 승리자이자, 큰 손해를 본 패배자였던 것이다.
오자와 이치로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어차피 7당 연합에서 일사당 몰표를 준다면, 일단 민사당은 연합 탈퇴할 것이고, 그러면 바로 미야자와가 유임된다.
그러면 어차피 이 결과를 유도한 일본신당, 신생당, 신당 사키카케 중 한 정당에 총리를 주자.
그런데, 사키카케는 의석수가 적고, 자신이 소속된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 대표를 총리로 올리면 반감을 살테니
의석수도 꽤 되고, 신당 붐의 시작점이기도 한데다가, 구마모토현지사 시절 평가가 좋아 이미지도 긍정적인
일본신당에게 주는 건 어떨까?
내가 일본신당을 전설의 정당이라고 평가하는 두번째 이유
영원토록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55년 체제를 무너트리고 세워진 첫 정권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대신 7당 연합으로 내각을 구성해야 했기에, 총리를 제외한 내각 그 어느 자리에도 일본신당 인사가 들어가지 못했다.
새로운 인물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호소카와 내각에 지지를 보냈다.
내각 수립 직후 내각 지지율은 74%에 달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후 호소카와 내각은 7당 연합이 약속했던 정치개혁을 하나하나 추진해 나갔다.
공직선거법과 정당조성법에 대한 개정안을 추진했고, 소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해나갔다.
문제는 이 7당 연합 자체가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보니, 의견이 부딪힐 여지가 잦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사당과 일사당은 거의 철천지 원수고,
일사당은 좌익이 확실한 반면 일본신당, 신당 사키카케, 신생당은 막 자민당에서 분리된 보수(중도우익)정당이다.
이러니 내각 내에서도 의견이 맞을 수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디테일한 내용이 궁금했지만 찾지 못했는데,
전반적으로 정치개혁안은 일본사회당의 반대로 지연되는 게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일본은 소비세와 관련된 논쟁이 지속 중이었다.
1989년 소비세가 도입된 이래,
거의 매년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폐지하자는 의견과, 국비 확충을 위해 상향 조정하자는 의견이 맞붙고 있었다.
새로운 내각은 이 부분에 대한 대안 역시 내놓아야 할 의무를 지녔다.
문제는 그렇게 제시한 대안이란 게 악수였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어 1994년(헤이세이6)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소비세를 페지하는 대신 국민복지세 7%를 도입하겠다 선언한다.
문제는, 소비세는 3%인데 국민복지세는 7%이다. 즉 세금 올릴테니 눈 감으라는 식의 명령인 것이다.
여론은 이에 분노했고, 내각의 지지율이 본격적으로 떨어진다.
게다가 이 즈음에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가 구마모토현지사였던 시절 사가와 규빈으로부터 1억엔 가량을 받은 정황이 포착되며
이 정권도 자민당이랑 다를 게 없다는 여론이 조성된다.
결국 1994년 4월 28일,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가 사임을 선언하면서 호소카와 내각은 263일만에 끝나게 된다.
후임 총리에 부총리 겸 외무대신인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가 취임하면서 자민당으로 회귀하는 참사는 막게 되었다.
하타 내각은 참 싱겁게 끝이 나긴 한다. 애초에 64일 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이후엔 자민당-일본사회당-신당 사키카케의 연립내각인 무라야마 내각으로 이어지는데,
그 흐름 속에서 전설의 정당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정답은 못 살아남았다.
'일본 정치 > 헤이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설의 정당 일본신당-6 (0) | 2024.09.11 |
---|---|
전설의 정당 일본신당-4 (0) | 2024.09.10 |
전설의 정당 일본신당-3 (0)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