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
긍정적으로 들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어느 집단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긍정적인 효과도, 폐해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다.
이를 정당으로 한정시켜서 해석하더라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위 친박, 친이, 친문 등
성향이나 행적에 따라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나쁜 것이라 보기에는 힘들다.
일본 정치는 파벌의 존재를 제외하고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자민당으로 축소시키더라도,
전후의 요시다 시게루와 하토야마 이치로,
55년 체제의 이케다 하야토, 이시바시 단잔,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인 5대파벌, 즉 삼각대복중의 시대로 이어지기에
그 효과가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 이전에, 파벌의 존재를 무시하는 순간 언급할 게 사라질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파벌 정치는 현재도 남아있다.
자유민주당과 입헌민주당은 물론이고,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일본공산당, 공명당, 국민민주당 등에도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중 자유민주당의 경우만 보도록 하자.
정당의 주요 수익은 당비와 후원금 그리고 보조금이다.
보조금이야 나라에서 주는 것이니 그렇다치고,
당비는 당원이 주기적으로 내는 돈이며 후원금은 후원회 같은 곳에서 주는 돈이겠다.
그렇다면 파벌의 주요 수익은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돈 많은 세습 정치인이라지만 자기들끼리 십시일반 모아봤자 수익이라고 할만한 규모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후원금을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모아야 할 것인가?
어쨌든 주요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이라고 한다면 자신 혹은 집단 구성원의 이름을 빌어
인맥을 동원해 돈을 모으는 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나는 편의상 이를 '정치자금파티'라고 부르려 한다.
이것이 친목회 형식이라면? 아마 돈다발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이런 식의 수익 창출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정치인도 사람이고, 이정도면 뒷돈보다는 앞돈에 가깝지 않겠는가?
물론 이게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나 기업으로부터 대놓고 돈을 받는 게 좋을리가 없다.
다만 적어도 누구에게 받는 지만 알 수 있다면 견제는 가능하니, 앞돈이라면 앞돈이겠다.
그 명단이 제대로 기록되어진다면 말이다.
2022년 11월 6일 아카하타에서 자유민주당 주요 5개 파벌이 정치자금파티의 내역을 불기재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그 불기재 내역이 2422억엔에 달한다는 기사를 썼다.
참고로 기 5개 파벌 중 아카하타는 '기시다파'를 강조했다.
파벌이 활동금을 얻기 위해 파티를 여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를 불기재하여 한화로 2억이 넘는 돈을 뒷돈으로 만들었다는 건 분명 좌시할 소식이 아니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조사한 고베가쿠인대학 가미카와 히로시 교수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168억엔에 달하는 금액이 불기재되었다며 자민당의 파벌들을 고발했고
뒷돈 사실과 규모가 드러나자 언론들도 본격적으로 이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가미카와 교수가 고발한 5개 파벌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불기재된 금액의 액수)
세이와 정책연구회(1952억엔)
지수회(974억엔)
헤이세이 연구회(620억엔)
지공회(410억엔)
굉지회(212억엔)
그리고 여기부터는 편의상 이 논란을 일본에서 주로 쓰는 표현인 '뒷돈 논란'으로 기술하겠다.
이를 여론이나 야당이 좌시할 리가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은 중의원에 출석해 뒷돈 논란에 대한 야당의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야당만 한 게 아니다. 공명당도 질의를 했다.
도쿄지방검찰청은 자민당 주요 파벌의 회장과 회원에게 출석을 명령했다.
상황이 이러니 불기재 금액이 컸던 이케다 요시타카, 오노 야스타다, 다니가와 야이치 3인의 중의원 의원은
자유민주당을 탈당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연히 이걸로 모자랐다. 애초에 이 사단의 원인은 파벌이 아닌가?
일단 여론이 달래야 하기에, 자유민주당은 주요 파벌의 해산을 선언했다.
2024년 1월 19일 지수회 회장 니카이 도시히로는 지수회의 해산을 선언했고,
같은 날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상임 간사회 회장 시노노야 류 역시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해산을 선언했다.
1월 23일 굉지회 회장이자 내각총리대신인 기시다 후미오는 자신의 파벌인 굉지회의 해산을 알렸고,
이후 헤이세이 연구회의 회장인 모테기 도시미츠는
헤이세이 연구회를 인사 추천과 자금 모집 기능이 없는 단순 정책 모임으로 축소시켰다.
1월 26일에는 임시 총회를 통해 유린회가 해산을 결정했다.
지공회는? 소식이 없다. 아직도 잘 활동 중에 있다.
이제 관건은 뒷돈 논란에 연루된 정치인들을 당내-사법적으로 처리하는 것만 남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자민당과 내각의 지지율이 이 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뒷돈 논란에 굉지회가 포함되어 있고, 굉지회의 수장이 바로
기시다 후미오이기 때문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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