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에 도착했지만 몸상태가 박살 난 건 그대로였다.
피곤하고 졸리고, 잠을 못 자니 몸이 무거웠으며 흡연장 찾는다고 좀 무지성으로 걸어서 다리도 아팠다.
돌고 돌아 흡연장이 있는 공원에서 담배를 폈는데, 거기가 오사카 역사박물관 앞이었다.
기왕 온 김에 오사카 역사박물관이나 가볼까 했는데, 오사카 역사박물관에 들어가니 신기한게 보였다.
바닥에 유리로 과거 나니와쿄의 유적을 보여준 것이었다.
마침 그 앞에서 자원봉사 하시는 할아버지들이 이거 설명 및 가이드가 14시반에 있는데
한번 보라고 말했고, 나는 내가 컨디션이 안좋은 데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자 위에 의자 있는데 거기서 좀 쉬다가 한번 보라고 말해주셨다.
어차피 박물관 입장료 내고 들어가봤자 계속 걸으며 지역사나 구경하는데,
일본서기에서 봤던 나니와쿄 설명이나 공짜로 들어보자 생각해서, 14시 반까지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니와쿄 유적 구경은 생각 이상으로 재밌었다.
창고 유적 및 기둥 자리(원통형 조명)
오사카 역사박물관 및 박물관과 붙어있는 NHK 건물은 아스카시대에 궁전이 있던 자리이고,
을사의 변으로 덴노에 오른 고토쿠 덴노 시기 수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한 번 불탔다가 9세기에 재건되었는데, 이 유적은 9세기의 것이다. 그리고 한번 더 불탔는데, 그 흔적이 발굴 과정에서 밝혀졌다.
사진을 안찍었는데, 기둥을 박을 때 주변에 석회로 기반을 만들고 가운데에 기둥을 박았는데,
그 기둥 자리에 검은 재가 발견되면서 소실되었음이 재증명된 것이었다.
위와 같은 창고 유적 및 관련 흔적은 나니와쿄를 포함해
아스카, 가츠라, 나가오카 등 아스카 시대 수도로 쓰인 궁전에서 모두 발견되는 형식이며,
창고 유적은 각각 그 용도 및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흔적도 발견이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리는 형태가 도다이지 쇼소인과 유사하며 금 조각이 발견되어 보물창고임을 유추할 수 있음)
발굴 이후 그 위에는 지금의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NHK 오사카국이 세워졌으며,
이를 보존함과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NHK 1층 바닥에는 원형의 사인을 해놨는데, 이는 유적의 기둥 흔적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위의 사진처럼 오사카 역사박물관 지하에 따로 보존해놓았는데
서울시청 지하의 군기시유적처럼 가 볼 수 있다고 보면 된다.(물론 상시 공개는 아님)
겸사겸사 가이드 해주신 할아버지랑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를 했다.
마침 내가 일본서기를 읽어본 적이 있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일본고대사 이야기도 했다.
물론 내가 일본고대사를 안다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졸렸다지만 고토쿠 덴노의 이름을 봤을 때 을사의 변과 다이카 개신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냥 알못이지 뭐.
일본고대사 이야기, 왜 백제는 일본어로 '구다라'인가,
가이드 할아버지가 국립 경주 박물관에서 본 한국 일본 고대 건축 양식의 유사성 등등, 뭐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일본어로
상당히 재밌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이때부터 몸의 피로가 사라졌다.
어쩌면 이때부터 나의 몸을 바쳐 도파민을 얻는 이번 여행의 컨셉이 정해진 듯 하다.
미리 한 마디 하자면, 이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노인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이후 원래 목적지인 오사카성으로 이동했다.
어느것 간사이는 네번째인데, 사싱 나는 오사카성 천수각에 처음 올라가본다.
맨 처음에는 오사카성에 갔는데, 같이 간 놈들이 징징대서 천수각은 못 올라갔고, 이후 두 번은 일정 상 오사카성에 가지를 못했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 뭐랄까 그간 이래저래 못 간 곳은 무조건 간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여기인 것이다.
참고로 그간 이래저래 못 간 곳 중 한 곳 빼고 이번 여행에서 다 들렀다.
당연하게도 오사카성은 참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오사카성에서는 일본어가 들리지 않았다.
이후 만난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사카성은 일본 땅이 아닌 것 같아.
수학여행 온 애들 빼면 일본인 관광객은 없는 거나 다름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수원 화성 잘 안간다. 융건릉은 가끔 간다.
임진왜란에 대한 설명이다
오사카성 천수각은 이전에 언급했듯, 박물관이라 생각하면 상당히 고퀄리티였다.
천수각 최상층의 뷰도 좋고, 천수각에서 오사카성의 역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설명,
(그 와중에 더 코리아 캠페인=조선출병)
오사카 성 전투에 대한 묘사 및 설명 등등, 나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 이상이라고 느꼈다.
대신 엘리베이터를 안 타서 다리 아프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체력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재밌었잖아.
겸사겸사 오사카성 왔으니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요도도노가 자결한 자리도 갔고,
이제 숙소가 있는 요도야바시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문제는 다리가 너무 아팠다.
애초에 오사카성이 꽤 큰데, 나는 대충 오사카성은 남에서 북으로 쭉 걸었으니 아플만 했다.
숙소에 겨우겨우 도달했고, 오사카에 있는 친구에게 7시반에 만나자하고
잠시 잠을 잤다.
지명이라 이렇게(이따구로) 읽히는 것이다
잠에 깬 후 주소역으로 이동해 친구와 라멘을 먹었다.
이게 사실상 첫끼라 정신 없이 먹었고,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맛있었다.
나는 내 친구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아베노하루카스 전망대에 가자고 했고,
내 친구는 자기는 안 올라가봤다며 기왕이면 자기 여자친구랑 처음 올라가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바로 야발롬아를 외쳤다. 아니 진작에 갔어야지.
비록 서울사람은 남산타워에 안놀라간다지만,
나도 솔직히 돈 아깝다고 남산타워 가본 게 한참 옛날이지만,
나의 강요에 의해 우리는 덴노지로 이동해 아베노하루카스에 올라갔다.
다른 사진은 조명에 비친 내 얼굴이 나와서 이거로 대체했지만
정말이지...아베노하루카스에서 본 야경은 충격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삿포로 이후 이런 감정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의 비교하며 순위매기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아베노하루카스의 야경은 야경으로 유명한 삿포로의 야경보다도 아름답다고 말이다.
오사카가 나름 평지가 넓다보니 전망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져있었고,
아베하루카스 북쪽 전경에서는 도톤보리, 우메다, 오사카성이 전부 보였다.
참고로 오사카성에서도 아베노하루카스가 보이긴 한다.
밑의 일루미네이션에서 봤을 때는 야경이 그리 이쁘지 않았는데 몇층 올라가니 신세계였다.
내가 간사이 몇번을 왔는데 여기보다 나은 곳 없다고 본다.
아니 일본 전체 통틀어도 없다.
이게 니혼이치지.
이후 덴노지의 이자카야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이때 이미 걸음수 28000)
친구가 도부츠엔마에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노숙자촌이 있는데 사람이 3층 높이 쓰레기 속에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왜 자랑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아는 형은 여기 이상의 도파민을 느껴보지 못했대나
시간이 좀 되길래 덴노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인 그곳을 가봤다.
그렇다. 그 유명한 아이린 지구였다.
쓰레기는 정말 3층 높이에, 길가에 노숙자가 자고 있다.
유튜브에서 본 100엔도 안하는 자판기는 실존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사 먹어 봤을텐데 아쉽다.
주변 이자카야는 전부 스낵바이고, 휠체어 탄 사람도 많았다.
그 와중에 내 친구는 미친놈이라 신기하다며 떠들고 있고, 나는 쫄아서 닥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휠체어 탄 할머니 우리를 보고 오지상 어쩌구저쩌구 그랬고(발음이 이상했음)
그때부터 나는 공포체험이 시작되었다.
내 친구는 주변 폐건물을 보며 '와! 여기 사실 사람 사는 거 아니야?'라며 큰 소리로 신나 있었고,
나는 도저히 못참겠어서 제발 닥치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안 닥치더라 미친새끼
그렇게 32000보를 기록한 나의 여행 첫날은 끝이 났다.
주기적으로 쉬어서 그런지 다리 상태는 나름 괜찮았고, 나는 나름 강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물론 원래 여행 중의 나와 평소의 나는 다리 상태가 다르다.
다만 이틀 합쳐 6만보는 오바였던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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