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이틀 남은 상태에서 발생한 애매했던 점 두가지
하나는 5일차 일정이 없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이한 관광권이 하루 남았다는 것
그렇기에 게이한을 사용하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문제는 갈 데가 애매하다는 것
은각사? 가봤다. 난젠지? 가봤고 지금 단풍도 애매해서 그냥 그렇다. 금각사? 가봤다. 그리고 멀다.
아라시야마? 기차 예매 안했고 지금 기차 새로 예매할 돈도 없다. 구라마? 기후네? 안가봤지만 가기 애매한데?
라고 생각하던 도중 든 생각
아 맞다.
아베 나라에서 죽었지?
일본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며 자민당이니 55년체제니 뭐니 하는 걸 디테일하게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본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총선대패로 정권이 바뀌니 하던 상황에 총리 지명선거가 하루 남은 11월 10일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이 2세가 오쓰에 죽었다면 러시아 제국은 더 오래갔을까?
아베 신조가 나라에서 살았다면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의석 수를 더 챙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 가봤더만. 나만 나라 안가봤잖아?
그렇게 다카이치 사나에의 지역구 나라로 향했다.
늉BGM ON
우선 게이한 뽕을 뽑아야 하니
게이한을 타고 긴테츠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역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곳은 이틀 차에 들렀던 후시미모모야마역이었다.
거기서 긴테츠 역까지는 도보 1분. 긴테츠를 타고 환승 한번 없이 야마토 사이다이지 역으로 갔다.
아마 저 맨홀 근처에서 그랬던 걸로 추측한다.
여기서 사람 죽은게 뭐 좋은 일이라고 신나서 사진찍고 그랬나 싶지만
어쨌든 일본 현대사에 있어 아베 신조의 이름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니 저기도 나름 역사적인 장소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길을 새로 칠해 정확한 위치를 알기는 힘들었다는 점 정도?
참고로 여기는 나라시 중심부 중 일부이고 이 근처에 관광객은 아무도 없다.
동대사(도다이지)가 있으면 당연히 서대사(사이다이지)도 있어야 하고
실제로 이 근처에 사이다이지가 있지만 안갔다.
야마토사이다이지역에서 기차로 몇분을 더 가면 긴테츠나라역이 나온다.
그리고 역을 나와 언덕길을 오르면 우측에 펜스가 하나 보이며
거기부터가 그 유명한 나라 사슴 공원이다.
당연히 나도 사슴 보러 간 것이기에 기차에서 위에 저 영상보면서 기분 좀 냈다.
시카노코노코노코코시탄탄
여담으로 돌아오고 나서 시카노코노코노코코시탄탄 애니메이션 봤는데 뇌 빼고 보기 좋다.
말레이시아 바투동굴의 치안은 말레이시안 갱스터 원숭이들이 책임졌다면
일본 나라의 치안은 나라노양키 사슴들이 책임졌다.
신기하게도 사슴들은 전병(시카센베)을 파는 상인들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관광객이 전병을 구매하면 바로 달려들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지만 고개 끄덕이면 전병을 준다는 소문이 사슴들 사이에 돌았고 그래서 다들 끄덕인다.
참고로 저기 사슴은 그냥 사람이다. 길 건너고 인사하고 지하도 돌아다니고 다 한다.
긴테츠나라역에서 도다이지 가는 길에 지하도가 하나 있는데, 그 지하도 앞에 워낙 사슴이 많기에
이야 이러다 지하도에 사슴 있겠다 했는데 진짜 있는 거 보고 나랑 내옆에 서양인이랑 엄청 웃었다.
눈치도 좋다. 다리가 아파서 태워달라 하니 좀 보다가 도망갔다.
당연히 나도 전병 사서 줬고, 사슴들이 몰려와서 전병 달라고 내 옷을 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슴이랑 사진 찍고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털이 상당히 뻣뻣했다.
참고로 전병의 가격은 200엔이고, 열개인가 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병을 포장한 종이끈도 자연분해가 되며 사슴이 먹어도 되는 재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슴 먹으라고 만든 거라 그런지 맛은 없다.
나라 사슴 공원(고후쿠지, 나라시청, 나라 국립박물관, 도다이지 일대 전부)에는 사슴이 진짜 많다.
고라니 아니다. 노루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겨우 볼까말까한 꽃사슴이다.
일본어로 사슴은 시카, ~밖에 없다는 ~시카~나이,
奈良にはしかしかありません。
그래도 사슴 신기하잖아. 귀엽잖아. 눈이 초롱초롱하잖아.
저런 초롱초롱한 눈으로 전병 달라고 고개 끄덕이며 다가오잖아. 귀여웡
나라에 사슴이 많은 이유는 후지와라씨의 토속신이 사슴이며
이를 위한 신사가 도다이지 서쪽에 있는데(이름 까먹음), 여기를 중심으로 야생사슴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행동이 사람 같아서 그렇지 여기 사슴은 나라시가 관리하는 사슴이 아니라 야생동물이다.
그렇다고 괴롭히면 벌금에 구류래나?
그리고 정말로 사람 따라 뛰고 들이박고 옷 물고 애들 무섭다고 울고 길거리에는 사슴똥이 굴러다닌다.
이것이 바로 시카이로데이즈가 아닐까?
계속 말하듯 저건 야생동물 사슴이지만 행동은 사람이나 다름 없기에
전병 달라고 다가오는 사슴에게 양손을 펼치며 없다고 하면 눈치껏 간다.
당연히 나라에 왔으면 도다이지를 가는 게 맞다.
정말 소문대로 정말 컸으며, 내부도 웅장했다.
참고로 위 사진 우측 희미하게 나온 석등은 나라시대의 유물이며, 수차례의 화마를 견디고 살아남은 보물이다.
주요 목조건물이 그랬듯, 도다이지도 화재가 참 많이 일어났다. 겐페이핫센, 전국시대 등등등.
지금의 건물은 에도시대에 복원한 후 메이지인가 쇼와시대에 보수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도다이지 본전 앞까지는 사슴들이 바글바글했지만
내부의 직원들이 사슴이 못들어오도록 막고 있어 도다이지 본당에는 사슴이 없다.
안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말고는 전부 외국인이다. 아 물론 나도 외국인이다.
입장료가 싼 편은 아니지만 그 값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다이지는 화재로 인해 모든 시설이 잔존해있지는 않는다.
그래서 본당과 다른 시설이 연결되어있지는 않은데, 그 다른 시설 중 하나가 바로 이 쇼소인(정창원)이다.
이때가 11월 10일인데 11월 12일부터 외관 공개가 끝난다고 한다. 나름 운이 좋았다.
지금도 황실 보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쓰이며,
그 보존재로 사용되던 통일신라 촌락문서의 발견으로 한국사학계가 뒤집어진 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호두를 키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학계의 정설 하나가 뒤집혔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신라는 유물만 많지, 관련 문헌이나 자료는 고구려나 백제처럼 남아있는 게 없다 봐도 무방하다.
현재 촌락문서는 다시 보존재로 돌아가 저 쇼소인 안에 있다.
교과서에서 보면 그냥 창고 건물 하나인듯 나오는데, 생각 이상으로 컸다.
아니 뭐 도다이지는 다 커
참고로 쇼소인 근처로 오면 사슴은 거의 안보인다.
전병 달라고 달려드는 사슴은 없고, 잔디밭 그늘에서 쉬는 사슴들 뿐이다.
근처 풀밭에서 사슴들 보다가 버스를 타고 나라역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게이한 승차권 뽕을 뽑을 최선의 루트를 짜서 우지로 이동했다.
우지로 이동하기 전 나라역에서 바로 저 포스터를 봤는데, 나라의 새로운 마스코트인듯하다.
이름은 위에 써있듯 '시카마로쿤'
나라 마스코트는 그 사슴뿔 달린 스님뿐인 줄 알았는데 드디어 나라시가 정신을 차린듯하다.
시카마로쿤 인형을 못사들고 온 게 내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사와도 우리 강아지 장난감이 되어 며칠 내로 걸레가 되었겠지.
개인적으로 나라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여행지 중 한 곳이었는데
아마 그 이유는 루트가 굉장히 깔끔하게 짜였고 임팩트가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사카에 짧게(2박 3일or3박 4일) 있어야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모든 관광지가 역에서 거리가 있는 편이고 한두군데 둘러보는 걸로는 부족할 교토보다는
나라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카 카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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