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서양사에 대해 글을 쓰게 된 두번째 계기는 모 보수 유튜버의 그레이트 게임에 대해 언급한 것에서 왔다.
당시 그 유튜버의 논리는 그레이트 게임 당시 일본을 지금의 한국 상황에 비유하며
직접적 위협인 러시아가 아닌 강대국 영국과 손을 잡았기에 일본이 생존했듯,
한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직접적 위협인 중국과 거리를 두고 친미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자유주의와 관련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강조했는데, 이 부분은 생략하고 말하자면,
그냥 이 논리는 나무위키로 그레이트 게임 쳐보고 배운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공부하는 것이 일본근대사이고,
내가 그나마 공부했다고 할만한 서양사 파트가 비스마르크 체제와 그레이트 게임이었기에
아무리 내가 반중 성향이 강하다지만, 저 발언은 뭐랄까 우습고 동시에 불쾌했다.
그레이트 게임과 영러관계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러시아는 아시아인가? 아니면 유럽인가?현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러시아는 유럽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잠시 배제하고 다시 생각해보자.러시아는 아시아 국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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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이란 크림전쟁부터 영러협상까지 이어진 영러 간의 패권경쟁을 의미한다.
실질적 전쟁은 없었지만 러시아는 확장을, 영국은 러시아 견제를 추구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이 이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 기간에 과연 영러는 경쟁관계였을까?
물론 경쟁은 했다.
이런 경쟁은 영러 간에만 있던 게 아닌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 간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이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한 때부터 1907년의 영러협상까지 꾸준히 지속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패권이 위협이라 여겨졌다면
영국은 1860년 베이징 조약에 대해서 그 중재자로 러시아가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야했다.
영일동맹을 기반으로 러시아를 방해하고자 했다면 러시아 발트 함대의 이동경로에서 영국 식민지에의 상륙과 지원을 막아야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 모든 것에 순순히 응해줬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파트너로 오스만과 페르시아를 영국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으나 그런 정황은 조금도 없다.
그냥 정황 증거로 나오는 것은 영국 의회와 내각에서 러시아를 잠재적 위협으로 인지했다는 문서 하나 뿐이다.
심지어 표트르 1세의 유언장은 사실 여부가 불분명하다.
반면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로 인한 마찰이라고 한다면 언급할 건 세가지 정도있다.
크림전쟁, 거문도 사건, 베를린 회의
이 세 순간은 분명 영러 간 마찰이 표면화된 것이며, 영러 양국 간의 전쟁까지 염려할 수 있는 위기였다.
하지만 전쟁은 없었다.
그리고 이 세 위기가 그레이트 게임의 근거라고 한다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영국과 프랑스의 패권 경쟁도 그레이트 게임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여기는 전쟁도 있었다. 그러면 여기는 그레이터 게임인가?
50년 넘게 진행된 경쟁관계라는 점에서 강조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따지면 영불경쟁도 강조해야만 하게 되어 버린다.
물론 영불경쟁은 영러경쟁과는 환경이 다른 감이 없지 않지만, 패권 경쟁의 면에서 영불경쟁은 그레이트 게임만큼 강조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영국 내에서 러시아 견제를 구체화한 증거가 없다. 프랑스는 있는데 말이다.
즉, 그레이트 게임은 과장된 용어일뿐, 영국이 행한 수많은 경쟁관계의 일부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레이트 게임을 입증할 증거보다는 그레이트 게임을 단순화할 증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이 경쟁관계에 있어 일본은 어떻게 생존했는가?
이를 길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서양사 파트이니 다른 논점을 제시하자면,
'이 경쟁관계에서 청은 관계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러시아는 청일전쟁 직전 일본 견제를 목적으로 청을 상당히 지원해줬다. 물론 의화단 운동 직후에는 손절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청러관계에 있어 영국은 무얼했고, 영국이 청을 대신하여 일본을 선택해야했던 이유가 있었는가?
무엇보다 영국은 거문도 사건 이후 아예 청과 접촉하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에 있어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의 외교적 역량을 설명해야한다. 근데 이건 서양사니까 생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일전쟁에 대한 영국의 직접적인 지원은 없었다.
발트 함대가 희망봉을 돌아간 이유가 영국이 수에즈 운하 통행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있는데,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가 외교문서 뒤지면서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나중에 알기로는, 당시 군함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에는 수에즈 운하가 얕았다고 한다.
즉, 애초에 러시아는 수에즈 운하 통과를 생각하지 않았고, 고민할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초반 영국과 일본의 관계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집약된 결과이자
그 틈새시장을 비집고 들어간 일본의 외교적 성과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즉 그레이트 게임을 기반으로 설명하는 반중 논리는 아쉽게도 결여된 것이 많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레이트 게임과 같은 미중 경쟁에서 한국이 생존하려면 누구의 손을 잡아야할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 할까?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외교 방면에서 유능한 사람들이 포진되어있다. 겉으로 안드러나서 그렇지.
그렇다면 그레이트 게임에 휘말린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그 사이에서 이득 볼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의 손도, 중국의 손도 놓아서는 안된다. 애초에 어느 쪽을 놓는다는 자주적인 선택지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실리에 있어 우리나라는 함부로 포기할 수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강점 없는 약소국은 절대 아니지 않는가.
만약 미중경쟁이 그레이트 게임이 되어, 세계 어딘가에서 제2의 크림전쟁과 제2의 거문도 사건이 발발했을 때,
우리나라가 한쪽의 손을 진작에 놓았을 가능성은 솔직히 낮다. 그리고 그랬다면 ㅈ된 거다.
그리고 그 미중갈등의 장이 우리나라가 되지 않는 한 그 경쟁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낮으며,
미중갈등의 장이 우리나라가 되려면 2차 한국전쟁 말고는 경우의 수가 없다.(그리고 이건 가능성이 없다)
사실 미중갈등은 그레이트 게임과 비교했을 때, 솔직히 그렇게 표면화되어 있지 않다.
애초에 경쟁 자체가 경제와 산업 분야에 한정되어있고 패권이나 군사적인 갈등까지 확장된 상태는 아니다.
그렇다면 현 상태에서 우리나라는 미중갈등의 양상을 관찰하면서 향후를 대비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와 입지를 생각한다면 굳이 한쪽의 손을 놓기에는 부담스러운 감이 큰데,
극좌에서 주장하는대로 미국을 쫓아내고, 극우에서 주장하는대로 중국을 쫓아낸다면
그 피해와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냥 지금 하던대로 가만히 있는 게 아직은 낫지 않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건데, 하필 내가 들어서 불편해하는 것일지도,
아니 나무위키만 읽고 역사를 기반해 생각을 논할 수 있는 훌륭한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가지는 불편함에 적응은 여전히 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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