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Belle Epoque)-불어로 좋은(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이다.
대충 나폴레옹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 일종의 평화의 시대를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사실 상당히 모순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대가 과연 평화로웠냐는 것이다.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이 발생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사실상 중단되었던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재개된 순간이었고
러시아는 이 기세를 몰아 카프카스-발칸 방면으로의 남하를 가속화했다.
1829년 그리스 독립전쟁의 종전조약으로 체결된 아드리아노폴리스 조약에서 러시아가 얻어 낸 것은 다음과 같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 영토 내에서 러시아인의 통상권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 대한 러시아 선박의 무해 통항권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에 대한 종주권
-카프카스 지방과 도나우 강 하구 일대의 영토
즉 그리스 독립전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독립하게 된 그리스이지만
러시아 역시도 지중해 진출이라는 숙원사업을 해결한 것이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남하에 자극받은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러시아에 대해 경쟁자이자 향후 영국의 국력을 추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라 여겼는데,
러시아가 영토와 인구 증가면에서 프랑스를 추월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가 향후 지중해와 페르시아 방면에서 영국의 이권과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영국에 준하는 강국으로 만드는 것을 억제해야만 했다.
그 결과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했다.
기독교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를 상대하기 위해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지원하는 이형적 형태의 전쟁은
나폴레옹을 쓰러트렸던 러시아가 아직은 유럽 강대국에 준하는 국력을 가지지 못했음을 반증시켰다.
1848년 유럽의 변동, 그리고 독일 통일
1848년은 혁명의 해라고 불리운다.시칠리아의 독립선언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의 열기가 프랑스 2월 혁명으로 폭증했고,이 열기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이나 1830년의 7월 혁명에 비하면 그 규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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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러 간의 경쟁과 이로 인한 전쟁을 배제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시대가 평화롭지 않았음은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열기는 결국 1848년의 혁명을 만들었고,
그 혁명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는 물론이요, 혁명의 영향으로 일어난 이탈리아 통일전쟁, 보오전쟁, 보불전쟁은
결국 평화는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러한 것들을 단순히 유럽에 한정시키지 않고 다른 대륙까지 본다면
1839년부터 1842년까지 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40년 1차 아편전쟁과 1856년 2차 아편전쟁
1857년 세포이 항쟁
1859년 스페인-모로코 전쟁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 남북전쟁
1863년 사쓰에이 전쟁과 시모노세키 전쟁 등등
제국주의적 확장 등을 이유로 한 수많은 전쟁이 동시대에 발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왜 평화의 시대이자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인가?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이후 시대가 정말로 평화롭지 못했다.
1914년부터 1945년까지, 1차대전-대공황-2차대전으로 이어지는 시대는 핏빛시대에 비한다면
분명 벨 에포크로 불리는 시대는 비교적으로는 분명 평화로웠다.
다음으로 당시 모든(혹은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의 확장주의는 상대국을 잡아먹기 위한 확장주의가 아니었다.
일종의 실리주의적 심리가 결합되어있는 것으로,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상대를 억제한다는 명분이 우선되었다.
크림전쟁, 보오전쟁, 보불전쟁 모두 이런 심리가 강조되는 전쟁이었고,
그렇기에 유럽 내에서는 적어도 일종의 타협에 따른 결과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부분 역시 선술한 이후 시대의 양상, 특히 2차대전 직전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승패가 갈리더라도 세력 균형은 유지되었다.
물론 우위를 점함에 있어서는 몇몇 전쟁으로 우열이 뒤바뀌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몰락한 유럽국가는 없었다.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은 분명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 타격을 주었지만
그렇다하여 저 두 국가가 외교적으로 사장된 건 아니었다.
(이를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기도 했지만 이는 생략한다)
이는 크림전쟁 직후의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군사적 패배가 정치적-경제적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세력 유지에 타격을 준 것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그 어떤 전쟁의 결과도 유럽의 극단적인 변화를 유도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세력 균형 내용은 상당히 모순적인 부분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크림전쟁, 보오전쟁, 보불전쟁 모두 대전쟁은 아니었다지만 분명 승패는 명확히 갈린 전쟁이었고,
이에 따른 배상금이나 그 외 영토 손실, 패권 영향력 손실 등은 분명히 이어졌다.
그런데 세력 균형은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순이 실현될 수 있었던 이유를 보려면, 당시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실질적 패권국 역할을 했던
영국의 외교적 자세에 집중해야 한다.
당시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대항해시대에 건설한 식민지에 산업혁명의 시발점이라는 특성이 합쳐지며
영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유럽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게 발전했다.
아메리카 13개 식민지를 미국 독립전쟁으로 잃었다지만 그래도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였으며
아편전쟁으로 청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고, 일본을 외교적으로 압박하여 일본에서 수많은 이권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세포이 항쟁으로 무굴제국을 무너트리고 인도를 세계 최대 규모의 식민지로 삼았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 압박 역시 수월하고 실리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경쟁자라 할 러시아는 크림전쟁에서 한번 꺾였고, 프랑스는 보불전쟁으로 맛이 갔다.
대영제국에 도전할 경쟁자 하나 없는 이러한 영광의 시대 당시 영국의 군주가 빅토리아 여왕이었기에,
이 시기를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기본적인 외교적 방향성이 바로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총리이자 파머스턴 자작인 헨리 존 템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영국)에게는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고 영구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 만이 우리가 따라야 할 의무이다.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개인적으로 이 문장만큼 당시 영국의 외교적 자세를 설명하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영국은 필요하다면 프랑스, 러시아 등과 손을 잡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다.
그 결과 식민지 확장과 시장 확대 등 다양한 이익을 획득했으며, 태양은 대영제국의 영토를 하루 종일 비추었다.
그 과정에서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영국과 관련없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 했으며,
이는 유럽국가들이 영국을 대서양 국가로 취급하며 유럽 정세에 관여시키지 않으려 하는 경향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당시의 최강대국 영국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견제와 방관을 반복하여 유럽에 세력 균형 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유럽은 빈 체제가 추구했던 일종의 패권 균형이 영국의 주도로 형성되었다.
이를 영국이 만든 평화-팍스 브리타니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일종의 반영동맹이 형성되었다면, 식민지 경쟁을 두고 온 유럽이 영국과 경쟁하는 식이었다면
팍스 브리타니카는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은 유럽대로, 제국주의적 확장은 그거대로, 심지어는 대내적으로 부르주아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와 문제가 얽혀있기에 경쟁자와 쉽사리 손을 잡을 시대가 아니었다.
다만 영국은 이 당시 세력 균형의 중재자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벨 에포크의 평화, 세력 균형을 통한 안정이 정의될 수 있음은 곧 누군가가 유럽의 중재자가 되어주었음을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당시 일종의 신흥강대국이자 군사강국인 독일 제2제국이 담당하게 되었다.
각자의 실리가 부딪힐 수 있고, 각양각색의 갈등이 확장주의의 충돌로 야기될 수 있는 시대에
평화를 이룩한 또 하나의 기둥
그리고 서양사 파트를 굳이 신설해 글을 쓰게 된 원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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