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이(安政)
전국이 대지진으로 고통받고, 교토의 화재로 교토 고쇼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며,
흑선사건, 이에요시 쇼군의 죽음과 병약한 이에사다 쇼군의 즉위, 막부 재정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난립한 시기에
이 모든 게 해결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잘 전해지는 연호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못한,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다.
미일화친조약의 체결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미토번주이자 막부해군을 관하던 쇄국파의 대표
마쓰다이라 나리아키(松平斉昭)였다.
당연히 당시 개국이라는 선택을 주도하고, 지지했던 아베 마사히로, 홋타 마사요시, 이이 나오스케 등과
당연하게도 갈등을 보였다.
이에요시 쇼군의 죽음과 이에사다 쇼군의 즉위로, 이제 차기 쇼군이 될 후계자를 누구로 하냐는 것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사다 쇼군은 당연하게도 아들이 없었고, 그러니 누구든 양자건 뭐건 해서 후계를 잇게 해야했다.
아베 마사히로, 홋타 마사요시 등은 당시 쇼군의 가계가 원래 고산케 중 기슈 도쿠가와 가문으로 나왔다는 점을 들어
기슈번의 도쿠가와 요시토미(당시 9세)를 추대하고자 했다.
반면 마쓰다이라 나리아키, 시마즈 나리아키라 등은 이에나리 쇼군 이후 고산쿄 히토츠바시 가문에서 쇼군이 배출된 것을 근거로
히토츠바시 가문의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당시 17세)를 추대했다.
참고로 히토츠바시 요시노부의 친부는 마쓰다이라 나리아키이고, 히토츠바시 요시노부의 후견인이 시마즈 나리아키라이다.
그렇게 막부는 차기 후계자를 두고, 난키파(혹은 기이파)와 히토츠바시파로 양분되게 된다.
마침 난키파의 아베 마사히로, 홋타 마사요시, 이이 나오스케는 개국파,
히토츠바시파의 마쓰다이라 나리아키는 쇄국파였기에, 개국파는 난키파로, 쇄국파는 히토츠바시파로 이동하는 양상이었다.
그리고 1855년(안세이2) 아베 마사히로의 후임 다이로에 홋타 마사요시가 취임했다.
미일화친조약 이후 일본은 다양한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작은 러시아와의 러일화친조약이었고, 이어 영국, 네덜란드 등과도 화친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중 일본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었던 건 선두주자였던 미국이었다.
주일 미국공사 타운젠드 해리스는 다이로 홋타 마사요시와 교류하며 당시 세계 정세를 설명했고,
이를 통해 일본이 개국해야 할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좋게 말하면 이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당시가 2차 아편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군이 청나라를 영혼까지 털어먹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청나라가 이렇게 털리는 걸 설명하며 개국을 하지 않으면 일본도 이 꼴이 날 것이라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결국 1857년(안세이4) 일본은 구미 주요 국가들과 추가조약을 체결해 무역에 대한 규칙과 추가 개항을 단행하게 된다.
막부는 네덜란드로부터 간린마루(咸臨丸)라는 군함을 구매하고, 이를 기반으로 막부해군을 본격적으로 서구화하기 시작한다.
군대를 개편하고 국력을 강화한다는 발상은 충분히 좋았으나 문제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각국 공사는 다이로 홋타 마사요시에게 접근해 화친조약이나 추가조약이 아닌,
수호통상조약을 요구해 오기 시작했고, 그 근거로 불타는 청나라를 들며 협박했다.
결국 1858년(안세이5)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다.
뒤이어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 순서로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다.
이를 안세이 5개국 조약(安政5か国条約)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몇년 후의 일이지만 프로이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도 일본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미일화친조약과 비교하면 그 불평등성이 뚜렷하지만, 이건 나중에 개세약서 언급할 때 같이하도록 하겠다.
어차피 책 한권 새로 사서, 그것도 참고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은 절대 이딴 걸로 졸업논문을 쓰는 바보짓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원칙 상 외교는 막부의 역할이었다. 다만 서열(명분) 상 조정이 막부보다 위에 있으니,
조약의 체결은 막부가 조정에 선조치 후보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근데 이때 막부는 안세이 5개국 조약에 대한 보고를 늦게 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부랴부랴 다이로인 홋타 마사요시를 상락시키지만,
젊은 고메이 덴노는 이러한 막부의 행태가 조정을 무시한 행태라며 안세이 5개국 조약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다.
그 덕에 안세이 5개국 조약은 '안세이 5개국 임시 조약'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저 '임시'라는 단어를 애용하다가 논문을 갈아엎는 참 좋은 과정을 거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메이 덴노는 조약의 승인을 거부하고 있고, 이대로면 에도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 홋타 마사요시에게
비보가 하나 전해진다.
교토에서 덴노의 칙허를 받지 못한 홋타 마사요시는 다이로직에서 파면되었으며
로주 이이 나오스케가 다이로에 취임한다는 소식이었다.
글렇게 홋타 마사요시는 난키파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고,
막정은 '안세이의 붉은 귀신' 이이 나오스케가 주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