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어서 황제는 '왕보다 높은 왕' 정도로 인식되는 것 같다.
한국사에서 황제라 함은 일반적으로는 중국 왕조의 군주를 뜻하며,
황제란 말도 중국 신화의 '삼황오제보다도 높은 격'이라는 의미로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만든 용어이다.
다만 한국사에서는 왕 외에도 태왕(고구려), 어라하(백제), 건길지(백제), 이사금(신라), 마립간(신라),
심지어는 고려는 아예 작정하고 외왕내제 국가였기에
'그래서 황제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말하기에는 그 체감이 덜하다.
그리고 지금의 시선이라면 모를까 당시의 군주 호칭이 과연 중요할까 싶은 느낌도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들곤 한다.
서양사에서 '황제'라고 번역되는 것은 라틴어 'Imperator'라는 단어이다.
Princeps라던가 Basileus라던가 Augustus라던가 Caesar와 같은 단어도 있지만
상징성에 의거한 일종의 편의를 위한 칭호이며, 일반적으로 황제에 대응하는 단어는 Imperator이다.
다만 단어 자체의 의미에서는 '황제'로 직역되는 것이 아니고, 편의상 대응시킨 단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유럽의 황제는 누구를 뜻하는가?
유럽은 확실히 동아시아에 비해서는 작다. 영향을 줄 범위도 비교적 좁다.
그렇기에 유럽 황제는 실권이나 국력보다는 상징적인 느낌이 강하다.
다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유럽 최초의 황제이자 첫 Imperator는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즉 옥타비아누스이다.
(편의상 옥타비아누스로 적음)
제정 로마의 첫 황제이자 위에 적은 모든 칭호를 소유함과 동시에 시작시킨 인물로,
이 이후 유럽에서 황제는 로마 황제를 의미했다.
로마 제국은 영원하지 않았고, 황제의 위상과 입지 역시 영원하지 못했다.
385년 로마제국은 결국 로마의 서로마 제국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으로 분리되었고
476년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황제의 정치적 권위는 자연스레 교회로 넘어갔다.
다만 그 과정은 조금도 순탄치 않았고,
800년 카롤루스 대제가 '로마인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교회와 황제의 이중 체제가 성립되었다.
물론 이때는 동로마 제국이 건실히 살아있었기에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동로마 황제를 대신해 로마인의 황제에 오른다는 건 비논리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교회의 동서 대분열로 로마 교황청은 동로마와 정치적으로 결별한 상태였고,
그럼에도 카롤루스 대제가 서로마 황제의 왕관을 받은 것은 동로마의 큰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는 행위였기에
내가 기억하기론 영토랑 돈 좀 주고 달랬다고 들었다.
프랑크 왕국이 삼분된 이후로 서로마 황제의 왕관은 다시 로마 교황청으로 이동했고,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가 마자르를 격파한 후 962년 로마인의 황제로 즉위했다.
이 이후의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이라고 불린다.
흔히 신성 로마 제국은 볼테르의 조롱대로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니다고 취급받았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의미가 달랐다.
서유럽 유일의 황제이자 서로마의 후계자로 인정받았고, 유럽 군주 중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나 무의미했음에도 합스부르크 왕가가 굳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독점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성립을 전후로 하여 유럽은 봉건적 질서를 기반으로 한 군주 열국이 유럽 전역에 등장했다.
정치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
신(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교황)으로부터 인정받은 로마 황제의 신하이자 기사로서 백성과 봉토를 보호할 의무를 지닌 존재
일본식 서열로 공후백자남의 귀족 서열을 따질 수 있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고,
영지나 정치적 입지 정도가 그나마 중요하겠다.
예외라고 한다면 100년전쟁 이후 프랑스 왕 중심의 군주정이 정착된 프랑스,
레콩키스타가 완료된 후의 스페인 정도겠다.
이러한 유럽의 정치 체제를 붕괴시키는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멸망한 것이었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로마 제국 황제는 그렇지 않았다.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임을 선언했지만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러시아가 동로마를 대신할 정교회 세계의 수호자로서 동로마 황제에 스스로 즉위했다.
러시아 황제의 명칭 역시 로마 황제를 뜻하는 차르(Car-Caesar에서 유래)였지만
이 역시도 유럽 국가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다만 이 사건의 중요한 점은 유럽의 황제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동로마 황제 둘이었는데,
이제는 신성 로마 제국 하나만 남았고, 러시아는 일종의 황제 호소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사건은 바로 나폴레옹 1세의 등장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며 독일의 많은 제후국들을 복속시켰고
결국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2세는 이대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직을 빼앗기고(참고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선출직)
나폴레옹의 신하로 전락할 바에야 그냥 신성 로마 제국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해버렸다.
그리고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고, 나폴레옹 스스로가 프랑스인의 황제에 즉위했다.
나폴레옹은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이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교황 비오 7세를 불러 즉위식을 치뤘고
심지어는 교황이 왕관을 하사하는 게 아닌, 스스로 왕관을 들고 직접 썼다.
왕권신수설이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이로 인해 서유럽에는 두 명의 황제가 등장했다.
로마 교황따위 무시하는 프랑스인의 황제와 오스트리아 황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황제라는 이름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전통적 존재인 교회와 교황의 권위는 파괴되었다.
비록 나폴레옹 1세의 시대는 길지 않았지만 나폴레옹 시대로 인해 제국의 의미는 해체되었고 황제의 정당성은 사라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제는 누구든 힘만 있다면 황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역성혁명이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구나 황제로의 정통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도, 영국도, 그리고 독일도 말이다.
1848년 유럽의 변동, 그리고 독일 통일
1848년은 혁명의 해라고 불리운다.시칠리아의 독립선언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의 열기가 프랑스 2월 혁명으로 폭증했고,이 열기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이나 1830년의 7월 혁명에 비하면 그 규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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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독일 제2제국의 등장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이러한 이야기의 핵심은 독일 제2제국에 대한 것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일종의 전제처럼 사용하고자 적은 것인데,
이 줄거리에 있어 확실히 빗겨나가있기에, 이러한 주류의 이야기로부터 느낄 모순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이다.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러시아는 제국인가 아닌가?
그리고 근대 러시아의 정치체제는 근대적인가?
물론 이렇게 깊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작업이 유럽 봉건제와 황제에 대한 설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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