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체제가 개막한 이후 일본은 일본사회당과 자유민주당의 양당제 체제로 지속되었다.
물론 이 정국에서 정권을 독차지한 건 자민당이었다.
일본공산당, 민주사회당(민사당)처럼 3당의 역할을 해주는 정당도 있었지만 정권 탈환이 가능한 숫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했고,
그렇게 자민당은 다나카 금맥 문제, 록히드 사건 등 수많은 뒷돈 스캔들로 대외적인 이미지에 자민당 스스로 흠집을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민당의 위치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일본사회당이 도이붐 등 성장세를 보이며 자민당을 위협해오긴 했지만, 의석수가 아직 모자라 정권교체는 실현되지 않았다.
록히드 사건에 대한 뒷처리로 인해 자민당은 삼각대복중으로 요약되는 구세대에서
뉴리더 3인방(다케시타 노보루, 아베 신타로, 미야자와 기이치)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대중에게 새로운 자민당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위장하려 했으나 리쿠르트 사건이 폭로되며 이는 무산된다.
뉴리더 삼인방이 리쿠르트에게 뒷돈을 받아먹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고, 결국 다케시타 노보루가 총리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뒤를 이은 우노 소스케 총리는 어느 계파에 속해있지 않아 깨끗하다는 점을 내세웠으나
허무하게도 게이샤 섹스 스캔들로 자민당의 찬원선 참패를 만든 역적이 되었고, 곧이어 사임했다.
젊은 이미지의 가이후 도시키가 새로운 총리에 올라 리쿠르트 사건의 관련자들을 내각에서 배제시켰지만
이는 오히려 다케시타파, 미야자와파, 아베파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이런 식의 정국은 결국 일본의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이 때 마침 버블경제가 붕괴하며 내각과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은 폭락했다.
이러는 와중에 자민당 내에서는 다케시타파, 미야자와파, 아베파에 의한 가이후 총리 사임여론이 증가했고(가이후 내림),
다케시타파의 이러한 만행에 불만을 가진 YKK(야마사키 다쿠, 가토 고이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조직되었으며,
다케시타파는 내부 갈등 끝에 하타 쓰토무, 오자와 이치로 등의 하타파와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등의 오부치파로 분할되었다.
이런 식의 뉴스는 일본에 정치에 대한 불신만을 제공했고,
붕괴하는 버블경제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에 사람들은 질려갔다.
일본인들은 결국 정치에서 새로움(新)을 요구했고, 그 새로움에 호응하기 위한 첫번째 정당이 바로
전설의 정당
일본신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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