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방과 제국주의 일본의 완성
본격화되는 조선 침탈시간을 잠시 돌려서 1904년(메이지37) 대한제국의 분위기를 잠시 언급해보자.대한제국은 러일전쟁 개전 직전인 1904년 1월 고종황제가 직접 중립국임을 선언했으나 무시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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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나오는 떡밥이 하나있다.
한일합방조약은 정당하고 유효한 조약인가?
물론 일본의 2차대전 항복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한일기본조약으로 인해
1945년 이전 한일 간 체결된 모든 조약은 현재 법적으로 그 어떠한 효력도 없다.
다만 이와 관련된 논란은 아직 지속 중이라 할 수 있다.
즉, 한일합방조약의 정당성 논란으로,
만약 한일합방조약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1910년부터 일본은 35년간 한국을 불법점유한 것이 된다.
반대로 정당하다면, 적어도 35년간의 일본의 한국통치는 내용이면 몰라도 표면적인 문제는 없는게 된다.
조약이 정당하려면 어때야할까?
이와 관련해서 법적, 국제법적, 외교적 해석을 붙이기에는 나의 전공이 적합하지 않으므로
한일합방조약의 조항을 보면서 다음 세가지 조건에 대해 살펴보며 간단히 해석해보고자 한다.
1. 한일합방조약의 체결 과정 및 절차는 합당했는가
2. 한일합방조약의 체결 목적 및 명분이 합당했는지 여부 및 그 실현 여부
3. 한일합방조약에 내재되어있는 논리성은 당대 혹은 현대에 납득 가능한 내용이었는가
우선 한일합방조약의 내용이다. 원문이 조선총독부 관보에 적혀있는데, 이게 읽기가 상당히 까다로워
위키백과에서 한역된 것을 퍼오도록 하겠다.
대한제국 황제와 일본국 황제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대한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대한제국 황제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인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 대한제국 황제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 일본국 황제는 앞조항에 기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대한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락함.
- 일본국 황제는 대한제국 황제(순종), 태황제 폐하(고종), 황태자 전하(영친왕)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함.
- 일본국 황제는 앞 조항 이외에 한국 황족 및 후손에 대해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누리게 하고,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함을 약속함.
- 일본국 황제는 공로가 있는 대한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줌.
- 일본국 정부는 앞에 기록된 병합의 결과로 완전히 대한제국의 시정을 위임하여 해당 지역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대한제국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전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함.
- 일본국 정부는 성의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 적당한 자금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에 등용함.
(후략)
참고로 원문인 조선총독부 관보가 일본어로 되어있기에, 일본어 해석체가 들어가있고, 일본에 대해서만 존칭 사용이 되어있다.
먼저 한일합방조약의 체결 과정 및 절차에 대한 합당성 여부이다.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국통감이 메이지 덴노를 대리한 것에 대해서는 딱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완용이다. 이완용은 이때 전권위원으로 임명받지 못했다.
아무리 사실상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한 대한제국 조정과 정부였다지만, 전권위원을 임명할 권한은 그 전권을 보유한 주체,
즉 순종황제에게 있었다.당시 순종은 모든 수단을 사용해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일합방조약에 대한 입장표명을 미루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권위원으로 임명된 적 없는 이완용이 직접 임명장을 위조해 조약 협상의 장에 나아간 것이었다.
대체 어새는 어떻게 조작했대.
따라서 체결 과정 및 절차에 있어 정당하다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한일합방조약의 체결 목적 및 명분에 대한 합당성과 그 실현 여부이다.이에 대한 설명은 전문에 잘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양국의)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대한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와 방안 중 하나가 한일합방조약 6조와 7조의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뚜렷한 함정이 있다. 6조를 보자.
(일본이 한국에)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대한제국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전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함
말장난같지만, 요약하자면 일본의 말을 잘 듣는 경우에는 일본이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엔 7조를 보자.
일본국 정부는 성의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 적당한 자금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에 등용함
참고로 '적당한 자금이 있는 자'는 문제가 안된다. 저 원칙은 사실 일본인에게도 적용 중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6조와 같은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6조와 7조는 모두 친일파에 대해서만큼은 대우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친일파에게 돈은 5조의 '은금'을 통해 채우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내용이 실현되었는가?
대충 요약하자면
전문: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일본은 한국을 합병한다.
1~4조: 대한제국 황제는 통치권을 일본국 황제에게 양도하며, 그 대신 대한제국 황족의 명예, 위신, 안전 및 품위유지를 책임지고 지원한다.
5조: 한일합방에 공헌한 친일파에게 상과 작위, 그리고 돈을 준다.
6~7조: 친일파에 한하여 재산과 안전을 보호해주며 한반도에서 제국 관리로 등용한다.
5조가 실현되었음은 설명이 필요없으니 생략하고, 우선 1~4조를 보자면
의외로 일본은 이왕가에 대해서만큼은 지원을 열심히했다.
이방자 여사에 대한 일화로도 알 수 있듯, 이왕가는 일본 궁내성의 지원금을 가장 많이 받는 가문 중 하나였다.
다만 그 목적성에 있어 이왕가를 감시 및 통제하는 부분이 강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일합방조약을 위배한 부분은 없다고 봐야겠다.
문제는 전문의 내용과 6조, 7조의 내용이다.
동양의 영구한 평화,
즉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는 것이 어떻게 서양 열강에 의해 한국이 예속화되는 것보다 나은 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있다.
인종이 같으니, 문화가 유사하니, 이런 식의 논리는 힘의 논리에 의해 근거를 결여시키는 억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동양의 영구한 평화가 적어도 35년간 지속되었는가?
한반도 내에서는 여러차례의 배화학살이 발생했다. 이는 한반도의 치안유지를 동반하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애초에 3.1운동의 경우, 조선총독부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록 원인은 조선총독부에 있다지만, 무력투쟁으로 인한 사회혼란은 분명 동반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평화일까?
6조와 7조의, 친일적 인사에 한해 보호하고 지원하는 행동 자체가 상당히 애매하다.
예를 들어, 조약의 내용대로 일본의 법과 명령에 따른 서민 역시 보호받았는가?
조선총독부가 대한제국 황실을 대신하여 행정적, 사법적 권한을 통해 조선 인민의 권한을 보호했는가?
아니면 적어도 일본에 호응하는 조선인에 대해서라도 특별한 대우를 해줬는가?
이 세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즉 대우를 받은 조선인은 한일합방조약 체결로 작위를 받은 친일파에 한정된다.
그나마 늘었다고 해도 1930년대 초 즈음에 등장한, 친일로 전향한 일부 인사에 한정된다.
이를 과연 6조와 7조의 실현으로 해석해야할까?
마지막으로 한일합방조약에 내제되어있는 논리성에 대한 당대 혹은 현대의 납득 가능성을 보자.
이 조약의 내용을 당시이건 지금이건, 보자마자 나라를 빼앗겼다는 느낌 이상도 이하도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시대에 약소국이 소멸하는 건 당연한 현상일지 몰라도,
그렇다하여 이를 힘의 논리만으로 납득시키는 것은 분명 정당하다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적어도 일본이 한국을 병합함으로써, 한국을 통해 동양의 평화를 지킬 방법을 제시한다던가,
구체적인 이유를 기반으로 조선인민을 수호할 방법론적 내용이 들어가던가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빠져있다. 애초에 이완용 등의 친일파가 그런 데에 관심이 없었으니 빠졌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강하니까 꿇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면 상관없다.
대충 무능했던 조선왕실에 비하면 적어도 나았다는 평가를 할 여지가 있기라도 했다면 상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인과 동등한 수준의 대우는 애초에 없었고,
그나마라고 할 여지의 제도들도 1920년대에나 나왔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의 근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어 한국의 근대화는 1980년대에나 성과를 보인다.
심지어 북한은 아직도 근대화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한일합방을 통한 그 어떠한 효과나 성과는 한국에서는 없었는가?
있기는 했다. 인적자원의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효과가 나중에나 나왔다는 점, 그리고 일련의 진전이 35년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결국 한일합방은 나라를 빼앗아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한반도에는 한일합방의 댓가와 같은 효과가 없었다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 적어도,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기여를 논하고자 한다면, 조선총독부의 구성원이라도 조선인이 뽑을 수 있어야했다.
하지만 일본은 투표권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1940년대 조선인의 징병을 미뤄왔을 정도로 조선인의 권리증진을 지양했다.
그렇다면 당대에도, 현재에도, 한국인은 어떠한 명목을 기반으로 한일합방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
요약하자면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한일합방조약은 절차상 정당하지 못했다.
2. 한일합방조약의 목적과 명분은 구체적이지 못해 합리적이라 판단하기 힘들며, 이것이 실현되었다 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
3. 한일합방조약의 논리성은 상당히 부족하며, 따라서 어떠한 부분에서도 이를 납득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이 일련의 내용은 일종의 결과론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하지만 한일합방을 삼정의 문란 등 조선왕실의 문제점을 기반으로 해석하기에는
35년간 일본이 조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든다.
그렇다면, 목적도 절차도 결과도 내지 못한 이 조약에 대해 어떤 부분을 위주로 봐야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그 부분이 이 조약의 정당성을 설명할 만큼의 논리적 보완재 역할을 해줄 것인가?
설령 논리적으로 보완된다면 그 사실이 오히려 이 조약의 논리성이 결여되어있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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